제3회 세종도서 독서감상문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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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월의 시
  • 이상규 저 | 도서출판 경진(작가와비평)
  • 경북대학교 교수이자 1978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하여 4권의 시집, <종이나발>(둥지), <대답없는 질문>(살림), <헬리콥터와 새>(고려원), <불꽃 같이 타오르는 낙엽>(글누림)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왔던 이상규 시인의 5번째 시집 <13월의 시>가 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는 시가 태어난 그때의 원시성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심상이 담겨져 있다. 그의 시가 지향하는 것은 원래 시의 고향이었던 주술과 마법으로서, 시를 만든 그 원천으로 돌아가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원래 주술은 누군가와 무엇을 축복할 수도 있고, 누군가와 무엇을 저주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주술은 우리의 생명과 같은 것이었다. 사물의 뒷부분을 오랜 시간 응시하고 있는 이상규 시인은 자신의 언어 거물망에 살아 있는 인간 존재의 무심한 파편들을 언젠가 건져 올릴 날이 오리라 기대하고 믿는다.
  • 가능세계
  • 백은선 저 | (주)문학과지성사
  • 201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백은선의 첫 시집이다. "긴 호흡을 다채롭게 변화시키는 유려한 리듬"과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대결의식"으로 장차 "장시의 새로운 미학"을 보여줄 것이라는 등단 당시의 예측은, 4년 동안의 결과물을 모아 엮은 시집 『가능세계』에서 적중하였다. 한 편이 열 페이지에 달하곤 하는 백은선의 장시에서 범람하는 문장들은 쉼 없이 이미지를 나열한다. 이미지들은 숨은 의미를 위한 힌트로써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씌어지는 즉시 휘발"되기 위해 서로를 밀어낸다. "무의미의 사전" 안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백은선이 끝장날 듯하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희망도 완전한 종말도 불가능한 ‘가능세계’를 즉흥적으로 갈겨쓴 포말 같은 문장들로 채우는 장면이다. 오랜 아픔인 기억과 갓 태어난 슬픔인 사랑을 기반으로 불가해한 것에 도달하기 위한 백은선의 시적 실험은 ‘지금’을 만나 그 어떤 시보다 유효해진다.
  • 가벼운 집
  • 양수덕 저 | 도서출판 가림토
  • 양수덕 시는 집(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세계와의 불화를 감지하는 시대의 한 가운데서, 간결해지고 가벼워지기 위해 온 몸을 밀고 가는 달팽이 같은 진화의 행적을 기록해 놓는다. 그것은 존재와 삶, 그리고 각 시편들에 각인된 자립적 삶의 태도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거주하고 있는 허무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모른다. 양수덕이 포착하는 시적 풍경은 고통과 갈등을 품고 진득하게 견디던 기억을 포함하고 있다. 어느 순간 문득 느껴지는 “무딘 가위”이거나 “태양궁궐을 그리고 있는 광대”의 기분이 갈피마다 묻어난다. “놓쳐 버린 무엇을 향하여 끝없이 사다리를 늘려 보는 밤” (「눈의 하녀」)은 세계에 대한 안간힘의 기척들을 동반한다. 지상에서 인간의 집이란 무엇일까. “사람 하나,/ 불빛이 꺼지지 않는 집 한 채” (「돌아온 집」)는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 집에는 귀들이 늘고 있다” (「수집가」)를 통해 귀를 부수고 ‘귀’를 만지는 아픈 밤을 만난다. 시인은 자신과 싸우는 존재라고 생각하다가 ‘귀’와 싸우는 존재들이라고 쓴다. “낯선 땅에서 홀로 먼 길을 가야 하는 뼈들의 눈물겨운 조립과정을 통해 떠도는 것들을 다 끌어안고 앓고 있는 시인은 우주의 거대한 집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 게스트 하우스
  • 김예진 저 | 한국문연
  • 사랑스런 계절이다. 문밖으로 나가고 싶은 말들이 꿈틀거린다. 그 세계가 마치 오후 네 시의 빛처럼 따뜻하고 아늑해진다. 사랑스런 그 이름을 대신 불러주고 싶어 그 끝없는 길에 섰다. 내 밖에서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봄은 꽃을 건너 잎으로 가고 있다.
  • 고요의 힘
  • 안경원 저 | 시로여는세상
  • 오랫동안 대학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안경원 시인은,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담담한 산책자의 면모를 그림자처럼 드리우고 있다. 번민과 갈등을 겪으면서 참다운 인간 존재로 거듭나는 길을 탐색하면서 '시인의 길'에 이르는 길은 고통을, 이웃처럼 사랑하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깊은 사유를 통해 얻어진 사유를, 정련 된 언어를 통해 발설한다. 짧지만 저녁의 그림자처럼 긴 여운이 남는 시집이다. 그에게는 삶이 시이고, 시가 곧 삶으로 살아낸다.
  • 곰보 주전자
  • 김중일 저 | 도서출판 신생
  • 김중일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오랜 세월의 내공이 느껴지듯 시인의 시는 깊고 단단하다. 사람, 사물, 삼라만상과 자신의 삶에 대한 진솔한 성찰과 따스한 연민의 마음이 시의 행간을 빼곡히 메우고 있어 깊은 울림을 준다. 시인은 낡고 오래되고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실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원천이며,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을 따스하게 덮혀 준다고 말한다.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세월의 ‘묵은 때’를 함부로 여기지 않는 시인의 자세에서 오늘날 물질주의와 새것 콤플렉스에 취해 있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또한 시인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세계가 멀리 외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펼쳐진 일상세계에서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지금 뿌리박고 살고 있는 이 삶에 ‘푸른 그늘’을, ‘부동의 섬’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가난하고 소박한 이웃, 타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있어야 함을 여러 시편을 통해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 공중국가
  • 박무웅 저 | 도서출판 달샘
  • 나에게 詩는 얼지 않는 물씨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게 되었다. 지난날의 삶의 질곡과 무게가 詩라는 지평에 새로운 뜰을 만들어 주었다. 이번 시집 ‘공중국가’는 삶의 현장, 즉 사업상 비행기로 이동하는 기내와 지상과의 이격離隔된 곳에서 존재의 상황을 상상의 세계로 표현해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청명산을 오르다가 ‘썩어가는 박새 둥지’를 바라보다가 그 박새의 둥지가 나의 이곳저곳일지도 모른다는 자성으로 이번 시집의 시들은 그런 의미로 썼다. ‘슬그머니 장에 가시듯 세상을 뜨신’ 어머니를 ‘이문’이라는 시를 통해 오늘 밥을 먹고 사는 것이 어머니의 덕분이라고 그려보기도 했다. 일상의 삶속의 절절한 깊숙한 뿌리들, 즉 깨달음과 성찰에서 보내오는 격조를 조금씩 헐어 쓰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 시는 한 덩어리 지혜이며 삶의 버팀목이다. 끝까지 말의 고삐를 놓지 않을 것이다.
  •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
  • 송종규 저 | (주)민음사
  • 송종규의 이번 시집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에 담긴 일련의 풍경은 기억과 사랑의 목소리를 그리며 그것의 다양한 감각적 채집과 재현, 시간과 공간의 탐침과 표현으로 그 범위를 넓혀 간다. 시인은 ‘비비새’라는 “한 세계에서 한 세계로 건너가고 있는 것”을 호명함으로써 사랑의 기억을 언어로 붙잡으려 한다. 이러한 순간에 대한 적극적 부조는 시 곳곳에 나타나는 시인의 욕망으로서, 언어를 통해 사랑의 내밀한 순간과 공간을 잡아채어 활자로 증빙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이면서도 존재론적으로 계속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시인에게 작동한다. “공중을 들어 올리는” 일이 결국 불가능하다는 건 상식적으로 모두 알고 있다. 시인 또한 공중에 언어를 들어 올려 부조를 새기는 일이 불가능함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불가능 속에 시의 가능성을 찾는 것, 실패를 향해 투신하는 것을 송종규는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과정에 기억과 사랑은 나름의 형체를 찾는다.
  • 구구
  • 고영민 저 | (주)문학동네
  •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것, 이토록 애매한 그것을 우리는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2002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이래 <악어>, <공손한 손>, <사슴공원에서> 이 세 권의 시집을 펴냈던 시인 고영민이 신작을 선보인다. '구구'라는 제목으로 '구구'라는 이름으로. 구구, 마치 비둘기가 모이를 쪼듯 구구, 뒤로 풀어야 할 절절한 사연이 있음에도 그 뒷말을 지운 듯한 말 줄임의 구구… 또 한편 달달한 아이스크림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 이 구구가 이토록 씁쓸하게, 더불어 슬프게 들리는 이 느낌은 아마도 입이 있어도 할 말을 다 못 하고 사는, 살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의 이름표로도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 구름에 관한 몽상 : 세계사 시인선 175
  • 김재석 저 | 작가세계
  • 김재석 시집 <구름에 관한 몽상>은 오랫동안 개성적인 천체적 상상력을 구현해온 시인의 시선과 목소리가 더욱 심원하고도 산뜻한 경지에 다다른 일대 상상적 도록圖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의 시인은 자신의 시를 ‘해’와 ‘달’과 ‘별’로 가득한 ‘하늘’에서 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전의 낭만주의 시인들은 ‘하늘’을 자신의 양도할 수 없는 성소聖所로 묘사하고 거기 서 들려오는 신비로운 소리를 통해 신성神聖에 가 닿기도 했지만, 현대의 시인은 그 ‘하늘’ 아래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불가피한 삶을 형상화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숭고함으로서의 자연미가 소멸되어버리고 자연과의 낭만적 교감도 사라진 시대에, 시인들은 다만 감각적 재생력과 새로운 상상력을 통해 환상적 창조물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이를 빗대어 “이미지 생성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움직임인 역동적 상상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김재석 시편들을 통해 이러한 물질적이고 역동적인 상상력을 경험하면서 그가 ‘하늘’에서 새로운 환상적 창조물을 길어올리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 구름의 진보적 성향
  • 김효연 저 | 문학의전당
  • 2006년 『시와반시』를 통해 등단한 김효연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구름의 진보적 성향』에 자주 등장하는 하드고어적 상상력은 일단 '여성'이라는 정체성에서 기인한다. 이처럼 여성적 주체에 대한 인식을 공고히 쌓아올릴 수 있었던 저변에는 극빈의 기억과 불온한 가족사가 있고, 비루하기만 한 현실 또한 큰 몫을 차지한다. 시인은 언어의 유희적 측면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이 하드고어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는데, 이는 기존의 틀이나 전통을 깨부수고 일탈적 주체의 자리에서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려는 시적 방법론이다. 일례로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망의 근원을 신체를 해부하는 과정을 통해 실감나게 그려낸 시편들에는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일체의 전통적 관습을 부정하고 전복하려는 태도가 깊이 스며 있다. 이러한 김효연의 시는 그동안 피학의 주체였던 여성적 목소리의 다짐이며, 더 나아가 억눌리고 소외된 모든 자들의 목소리다. 시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우리의 삶임과, 우리는 바로 그 고단한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외면하지 않는다. 고통과 파멸의 기억을 온몸으로 운용하는 김효연 시들이 보여주는 이 먹먹한 진실들이야말로 이 시집의 내면을 더욱 단단하고 무겁게 만드는 것들이다.
  • 구포역에서
  • 황인수 저 | 밥북
  • 황인수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구포역에서]. 첫 시집임에도 소설로 먼저 등단하고 창작해온 시인답게 시들은 탄탄한 서사적 구조와 독특한 언어적 형상화를 통해 시인만의 시 세계를 선보인다. 시는 그래서 단편소설이나 에세이를 압축한 듯한 형태를 내보이며 감상을 넘어 읽는 맛을 선사하고 한편으론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 국경 없는 농장
  • 하종오 저 | 도서출판 b
  • 하종오 시인은 이전에 <국경 없는 공장>(2007)을 펴낸 바 있다. 산업 현장의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시집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농촌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시집으로 <국경 없는 농장>을 펴냈다. 이 시집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 농업 이주노동자와 농업노동의 관계를 다루고, 2부에 농업 이주노동자와 농촌생활의 관계를 다룬다. 3부에서는 농업 이주노동자와 농업 자체의 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4부는 시인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와 농업 이주노동자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이렇게 농업 이주노동자라는 문제에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시집은 그것들에 대한 해법의 제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형식을 띄고 있다. 그 시적 물음들은 이제 이주노동자가 결코 타자일 수 없는 오늘날의 삶의 방식에 대한 보다 진지하고 넓은 이해를 가능하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신예평론가 김재현은 해설에서 “오늘날의 시가 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농업 이주노동자 문제를 묻지 않고는 한국 농촌의 미래를 생각할 수 없""다고 갈무리하고 있다.
  • 국수 삶는 저녁
  • 박시우 저 | 도서출판 애지
  •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피워 올린 시편들…“가을은 내게 많은 놀라움을 안겨 주었으니 살아 있는 모든 생의 비밀을 단단한 열매로 땅에 떨어뜨리는 햇살을 어찌 탓하랴”(「백수광부의 노래」).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박시우 시인이 첫 시집『국수 삶는 저녁』(도서출판 애지)을 펴냈다. 삶의 애환과 비극, 모든 생의 비밀을 환유를 통해 인유하는 시 쓰기로 새로운 서정의 진앙을 보여주고 있는 그의 시편들은 상상력의 경계를 뛰어넘어 섬세하고 그윽한 감성의 세계로, 음악의 질감을 시의 질료로 체감하도록 이끌며 독자들에게 독특하고 즐거운 시선을 선사한다. 정우영 시인은 “여기, 목덜미 불그죽죽한 사내가 고운 음성으로 노래 부르며 은단 같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어디서도 만나지 못한 시의 정경이다.” 라고. 전성태 소설가는 “아주 옛날, 거리에서 ‘만장(輓章)’을 든 시인이었다. 만장을 끼고 드뷔시와 슈만과 김종삼을 아끼던 형을 사랑했다. 혁명과 울분과 술과 음악과 그리고 나른한 퇴폐마저 있는 그의 곁이 편했다. 그로부터 삼십 년. 돌아갈 길 잃은 자처럼, 긴 가뭄 같은 날들, 별들이 눌러앉고 달이 뜨는 백주를 사나운 애인에게 데인 듯, 피맛 본 세상에 진저리친 듯 멀리 떠돌던 그가 이제 집으로 돌아왔다.”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실로 30년 만에 ‘시의 집’으로 돌아온박시우 시인을 반기고 있다. 이민호 평론가는 그의 시에 드러난 ‘여성성’에 주목했다. 즉, “오랜 방황과 헛된 욕망과 삶의 애환을 지우고 형형색색 채색하는 포옹의 존재로서, 재생을 소망하고 잔인한 패배에서 생명의 승리를 예감하는 끈질긴 삶의 존재로서”의 여성성이다. 그리고 “박시우의 시에서 음악은 무의식의 자유로움을 보장하는 시의 출구라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음악 또한 박시우의 시에서 여성적 글쓰기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설하고 있다. 이처럼 박시우 시인은 개인적인 체험이나 사소한 순간, 희노애락으로 장황한 삶의 단면을 포착해 긴장과 절제로, 때로는 질박한 언어로 교합하며 시의 구경과 삶의 판세가 서로 병치되고 교감하는 시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순수하고 투명한 음악의 형식 속에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신념을 담고자 한다. 오랜 세월 시와 떨어져 있으며 두루 외로웠을 시인. 그의 첫 날갯짓이 융숭 깊은 시세계로 훨훨 날아들기를 기대해 본다.
  • 귀가 자라는 집
  • 성명남 저 | 한국문연
  • 시로부터 도망가도록 부추긴 것도, 시에게로 돌아오도록 설득한 것도 결국
    나였다

    2015년 가을, 성명남
  • 귀띔
  • 김은숙 저 | 도서출판 황금알
  • 귀띔은 어떤 요긴한 사실을 갑자기 낮은 소리로 귀에 대고 속삭임으로써 큰소리로 외치는 것보다 그 강조의 효과를 배가시킨다. 늦가을 강천산의 흐드러진 단풍을 보면 안 망가지고 안 무너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유혹의 말이 이 시에는 이처럼 역설적으로 강조되어 있다.억새꽃처럼 흰 머리칼 휘날리는 옛사랑이나 나무에 최후처럼 매달린 붉은 감이 대롱거리는 장면도 어서 무너지기를 재촉하는 시적 긴장을 돕는다. 독자들에게 늦가을의 강천산에는 가지 말라고 귀띔을 해주는 이 시의 화자는 단언컨대 거길 다녀온 사람이다. 거짓말을 아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작가가 되는 것처럼 소위 뻥이라는 걸 잘 칠 수 있어야 좋은 시인이 된다고 한다. 뻥이란 두말할 것 없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 시의 화자는 늦가을의 강천산에 가서 무너져버린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무너져버릴 각오 없이는’이라는 말투는 이미 무너져버린 것을 자랑삼는 어법이다. 이 시의 화자는 귀띔이나 해주는 듯하면서도 늦가을 강천산의 단풍을 만끽하며, 자신이 무너져버렸던 것을 공개적으로 자랑하고 있다. 그 공개성이 적극적일수록 공감의 폭도 그만큼 크고 넓진다. -정양(시인)
  • 그녀의 쓸쓸한 하품
  • 배재형 저 | 도서출판 북인
  • 2007년 월간 『유심』으로 등단하고 2012년 첫 시집 『소통의 계보』를 펴내며 시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배재형 시인이 두 번째 시집 『그녀의 쓸쓸한 하품』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 『그녀의 쓸쓸한 하품』은 ‘사랑’에 관한 시집이나, 우리가 흔히 접해 왔고 알고 있는 ‘사랑’에 대한 시집이 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이 시집의 어떤 시편들이 ‘사랑’에 대해 단지 냉소적이거나 별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배재형 시인은 ‘사랑’에 대해 적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집 속 시인의 세상에는 온통 비가 내린다. 장대비 속에서 연애를 기다리는 그의 연애, 그의 사랑은 우수 어리고 늘 습기에 차 있고, 그래서 젖어 있다. 그의 사랑은 빗방울, 물방울 모습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눈물도 그 방울과 다르지 않다. 그의 시집 『그녀의 쓸쓸한 하품』을 관류하고 있는 비, 이슬, 눈물, 빗방울, 물방울들은 모두 물의 이미지이다. 물은 생명이면서도 종교적으로는 화해, 용서, 정화의 의미를 갖는다. 그는 그의 지나간 모든 사랑을 그렇게 정화시키고 용서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 그늘이 말을 걸다
  • 장유정 저 | 고즈윈
  • 2013년 「떠도는 지붕」으로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한 장유정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그늘이 말을 걸다』. 장유정 시인은 집이라는 거울을 통해 세계를 깊이 있게 성찰한다. 집은 시인에게 중요한 하나의 상징이다. 집을 사유한다는 것은 존재에 대한 사유를 의미한다. 집에 대한 탐구는 어떤 의미에서 존재의 형식에 대한 탐색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집이 있고, 그 속에는 수많은 삶이 담겨 있다. 집의 의미는 하나가 아니다. 집은 수많은 형태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이를테면 인간에게 집이란 삶의 안식처이자 돌아갈 공간이다 .시인은 집이 만든 “침엽의 그늘”(「그늘이 말을 걸다」)이 건네는 말들을 듣기 위하여 집의 소리를 탐구한다. 그녀의 시들은 그녀가 행한 사유의 집인 동시에 타자들의 집이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는 그녀의 시집을 읽으며, 모든 것이 너무도 빠르게 소모될 뿐 생성되지 않는 불모의 시대를 찬찬히 건너갈 것이다.
  • 그림자 극장
  • 이언주 저 | 현대시학
  • 2011년 「서정시학」으로 등단한 이언주 시인의 시집. 이 시집은 이별의 공간을 채운 언어들을 걷어내고 ‘웃음’과 ‘꽃’이 어우러진 세계를 새로운 언어로 채운 시편들을 품고 있다. 이를 두고 이별을 ‘극복’한 뒤의 변모라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별은 극복이나 성공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편들은 그 자체로 단독성을 가진 하나의 언어 세계들이다. 서양의 어느 문인은 그의 작품 한 곳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한 시인이 어제는 ‘삶이 눈물의 골짜기’라고 하고 오늘은 ‘삶이 미소의 나라’라고 해서 그에게 일관성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시인이 쓴 시 한 편 한 편은 어떤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시인 자신의 감정의 강렬함이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 한 시인이 쓴 58편의 시가 묶인 시집이 있다.
  • 기적 수업
  • 신승철 저 | 도서출판 황금알
  • 이 시집은 5개의 주제로 쓴 서사시이다. 그렇다. 병이 따로 실재한다고 생각하면, 병은 따로 있게 될 것이다. 우리 각자가 지닌 ‘신성한 마음’ 속에 ‘병’이란 게 깃들 리 없을 것이다. 아집과 망상이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것들이 무슨 병을 일으킬 리 만무하다. 홀로 가는 이 길이 결코 헛된 길은 아니다. 하지만 지구의 중력에 꼭 붙들려 매어 사는 인간으로서, 일상의 사사로움에 ‘사사로움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 사사로움 속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일로 가끔은 잠을 이룰 수가 없으니, 아직은 미완未完의 인생임을 알아서인 것이다. 살아왔던 삶의 드라마를 깊이 탐색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무의식의 상이 드러나기도 한다. 업業이다. 더 깊이 살펴보면, 이 삶 전체가 환幻이고, 그러기에 세상 전체가 환임도 환기하게 된다. 뿐더러 환을 환이게끔 알아채게 해주는 주체는 마음속 저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고요의 밝은 빛임을 자각하게 된다. 인간은 무한을 지나는 과객으로서 그 무한의 의미체인, 우주나 신을 인간적으로 나름 채색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에게 문제가 있다는 뜻은 없다.
  • 길달리기 새의 발바닥을 씻겨주다 보았다
  • 김은우 저 | 시산맥사
  • 김은우의 “새”가 가진 개성은 근본적으로 “새”가 갖고 있는 일반적 상징을 함유하면서도 시적 주체가 “새”와 같다는, 엄밀히 말하면 이전에는 “새”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리고 “꿈”의 대상으로서의 새에 대한 희원과 좌절 등과 같은 분열의 형태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시어는 “증후군”이다. 김은우 시의 주체가 보이는 수많은 “증후군”과 병증의 묘사, 통증의 깊이는 그녀의 병과도 관련이 있다. 그녀가 오래 아프고 견디어온 것들의 이야기를 써놓은 작품들이다.
  • 길이 열리다 : 류종민 시집
  • 류종민 저 | 도서출판 연인M&B
  • 길이 가르쳐 주는 새로운 풍경 - 시집 『길이 열리다』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중앙대학교 예술대 학장을 지낸 류종민 시인의 제5시집입니다. 시인은 길을 걸으며 눈으로 들어오는 많은 것들이 주는 새로움과 신선함을 통해 다른 풍경을 이루려 하고 있으며, 마음이 열린 만큼 다가오고 마음이 닫힌 만큼 사라지는 것들이 가르쳐 주는 깨달음과 깊은 성찰 등을 시로 형상화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도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며 함께 가자 손 내밀고 있는 시집입니다.
  • 깊고 푸른 섬
  • 문현미 저 | 도서출판 시와시학
  • 문현미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인 『깊고 푸른 섬』은 성스러운 세계를 향해 간절한 목소리를 내던 시인이 이제 자신의 내면과 상응하는 세계로 전이해가는 순간들을 담아낸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나아가 어떤 근원을 탐색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끝내 우리는 시인의 감각과 사유에 ‘고요의 내면’이 일렁이는 것을 환하게 목도하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진한 여운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시집에서 시학의 음역이 수직과 수평으로 확장되어가고 있고 감각과 정서에서도 다양성과 그 밀도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녀의 시편들을 읽고 느끼는 것은, 이러한 감각과 정서에 다다르는 과정에 동참하는 긍정과 공감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에서 은은한 내면의 파동으로 번져가는 심미적 서정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궁극적 가치인 사랑의 시학을 경험하게하고, 나아가 기억 속에 있는 존재론적 그리움을 한껏 느끼게 해준다.
  • 꼭 한번은 겨자씨를 만나야 할 것 같다
  • 윤용선 저 | 도서출판한결
  • 윤용선 시인의 '꼭 한번은 겨자씨를 만나야 할 것 같다' 시집은 시인의 눈과 마음으로 살아온 삶에 대한 성찰이자 세월의 기억 속 책장에 오롯이 적재되어 있는 듯 한 시들이다. 시인이 살아온 시절 나와 현재와 흑백과 칼라 필름으로 겹쳐 오버랩 된느 자화상 같기도 하다. 또한 시인이 보고 겪어온 지난 시간의 그물로 건져낸 세상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시인의 통찰력, 시인의 시들은 세상의 실상을 웅숭 깊은 눈길로 바라보며 이것을 자신에게로 소급시켜 내부의 거울로 _ 깨달음은 삶의 시간에 빚지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시인의 이 시집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 꽃피는 한 시절을 허구라고 하자
  • 최재영 저 | 문학의전당
  • 2005년 《강원일보》 《한라일보》, 200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한 최재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최재영의 시는 정직한 실존의 기록이다. 그것은 ‘역사’라는 비(非)시대적 목소리를 차용하여 세상-현실에 대한 메타언어로 진술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 혹은 밑바닥에서는 존재론적 불안의 기운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세계와 사물에 대한 개성적인 관찰과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적 시선이 어느 하나로 귀속되지 않고 평행선을 이루는 특징적인 면모를 지닌다. 세계와 사물을 대면할 때 그의 언어들은 한층 묘사적이어서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비유적인 언어들로 세계를 묘파하는데, 세계에 대한 시적 전유라는 점에서 이러한 비유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개성을 지닌다. 하지만 시집 전체를 읽으면 우리는 그의 시가 수시로 그런 시적 전유와는 또 다른 길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그리하여 반복해서 두 갈래 선택에 직면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개성적 시선에 의한 세계의 수사적 전유와, 내적 불안을 동반한 삶에 대한 회고와 성찰이 그것인데, 이는 곧 새로운 독해를 향해 열려 있는 무한한 잠재성의 세계로 이어진다.
  • 나는 광장으로 모였다
  • 박춘석 저 | 현대시학
  • 2002년 「시안」으로 등단한 박춘석 시인의 시집. 박춘석은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은 자아의 존재론이라 부를 수 있는 내면으로의 깊은 탐색이다. 박춘석은 자아의 본면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고, 너는 무엇이냐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자신을 다른 위치에 올려놓거나 다른 가면을 씌우게 하여 쳐다보기도 한다. “나를 만날 때마다 시를 썼던” (「나를 만났다 1」) 시인은 시적 대상이 된 사물이나 타자의 삶에까지 깊숙이 침투하여 자신과 동일화를 이루려고 모든 힘을 쏟아 붓는다. 언어는 차갑고 냉정하며 드라이하다. 그러한 언어의 색깔 속에 새로운 시적 방법론의 갱신을 위해 여러 방법적 실험들을 감행한 흔적도 엿보인다. 시적 주체의 존재를 시의 중심에 놓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시적 대상과 일체화시킨다. 또한 “전생의 나였던 사람을 만났다” (「나를 만났다 2」)는 고백에서처럼 이 땅의 삶과는 다른 삶(헤르만 헤세처럼), 음악과 미술과 같은 타장르의 인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 등도 여러 시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 나는 소금쟁이다
  • 조계숙 저 | 푸른사상사
  • 시인은 중력에 맞서는 소금쟁이의 부력으로 반복적 일상을 박차고 날아올라 좀 더 고양된 삶의 차원, 또 다른 미래의 비전을 일구어내고자 한다. 시인의 작품들은 풍요를 손에 쥐고도 폐허에 빠져 사는 이들에게 풍요로운 폐허라는 역설을 전해주고 있다. 기원적 시공간에 대한 추적의 모티프들이 시집 마디마디의 구석진 모서리들에서 피어오르는 까닭은 고정화된 삶의 패턴과 관성에서 훌쩍 날아오르고 싶은 시인의 간절한 바람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현재적 시간에서 겪어내고 있는 삶의 여러 난맥상들에 휘둘려 초라해지거나 비루해지지 않으려는 그의 순정한 마음결에서 온다. 곧 지금 당장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비속한 것들에 몸담기보다는 좀더 고결한 차원에서 그것들과 싸워 이겨내려는 내면적 투쟁으로부터 빚어진다. 조계숙은 뫼비우스의 변신술로 「바다가 갈라지다」와 「에그타르트」라는 대척의 공간을 넘나들지만 누구보다 진지한 도시생활 탐구자이다. 이 화려한 듯 보이는 메가시티에는 부도난 매일의 일상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겨우 생존할 수 있는 난간 끝의 삶이 가득하다.
  • 나라는 타자
  • 이태관 저 | 도서출판 북인
  • 1990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4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이태관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나라는 타자』를 펴냈다. "이태관 시인의 시는 바람의 이미지와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고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오홍진은 정의한다. 그의 시에서 바람은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매운 바람”(「에이피 통신」)이기도 하고, “난장의 봄”(「바람 발전소」)을 서둘러 불러내는 생명의 숨결이기도 하다. 죽음과 생의 경계에서 펼쳐지는 바람의 상상력은 다양한 사물의 이미지와 어울려 이태관 시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는 바탕으로 작용한다. 이번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시 「나라는 타자」에서 이태관 시인은 “바람 죽비”의 이미지를 “줄탁의 시간”으로 다시금 풀어내고 있다. “나는 고뇌하는 수도승”이라는 말이 오롯이 부각되는 이 시에서 시인은 “바람 많은 언덕에 탑을 세우고”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존재를 시의 세계로 불러낸다. 왜 하필 바람 많은 언덕에 시인은 탑을 세운 것일까? 그래야 세상의 이야기,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나라는 타자”가 풀어내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나라는 타자가 풀어내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시인 또한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상황에 이르러야 한다는 점에 있다.
  • 나무 무덤
  • 서정화 저 | (주)천년의시작
  • (주)천년의시작에서 펴낸 서정화의 두 번째 시조집 <나무 무덤>은 2014년, 배우식의 시조집 <인삼반가사유상>에 이어 두 번째로 출간되는 시조집이다. ‘무덤’이라는 말을 시집 제목에 넣기란 쉽지 않다. ‘죽음, 끝, 구렁텅이’ 등을 연상시키는 무덤이 이 시집에는 아주 빈번하게 그리고 친밀하게까지 보인다. “반얀나무 너른 품에 층층 앉힌 무덤들/ 죽은 아기 영혼들이 잠시 쉬다 가는 자리/ 새 별을 만드느라고/ 파란 하늘이 흔들린다.”(「나무 무덤」) 인터넷 포털에서 ‘반얀나무’를 검색하면 설명보다 먼저 거대한 나무들의 군상이 자료 화면으로 떠오른다. 동남아 여행 중 한 번쯤은 본 적이 있는 그 나무다. 가지에서 다시 뿌리가 내려와 땅에 닿으면 새로운 줄기로 솟아오르는 신기한 생김새의 나무는 서정화의 시에서 「나무 무덤」과 합세하며 새로운 힘으로 떠오른다. 이렇게 두 시를 나란히 배치한 구도로 볼 때 마치 설치작가가 두 개의 오브제를 적절하게 배치하여 새롭고 오묘한 느낌을 창출하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데 ‘무덤-나무’의 연결 고리는 시인이 만들어낸 새롭고 전위적인 착상이라 할 수 있겠다.
  • 나무가 되고 싶은 사람
  • 박재현 저 | 시선사
  • 정공량은 뒷표지 말에서 에서 박재현 시인은 이 시집에서 자연 속에 온전한 삶을 향유하자는 강한 희망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산업화와 현대화로 도시문명에 찌든 우리들의 삶을 맑게 씻어주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의 원천이다. 우리가 자연의 품안 속을 부모의 품과 같이 포근하게 안길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른 뒤에도 정신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었다고 느끼는 존재가 자연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라고 이 시집에 대해 평하고 있다.
  • 나비문신을 한 사람
  • 이채형 저 | 문학나무
  • <나비문신을 한 사람>은 6부로 나뉘어 70편의 시를 싣고 있다. '가야산', '목탁조와 더불어', '서산 시편', '화가', '그의 소설', '근황', '너훈아', '빠삐용', '벤허', '만추' 등 인생을 관조하는 시상의 정서가 깊고 넓다. 소설가로서 문학 장르를 넘나드는 또 다른 시인의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 나의 아래층 사람 : 아흔아홉 편 시 묶음 잇기 03
  • 강은미 저 | 채륜
  • 99편의 시 도처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페르소나! 강은미, 그녀는 시를 쓰는 시인이고 어머니를 모시고 가까운 절에 가려 집을 나서거나, 항암치료 중이신 어머니를 위해 봉동의 한 가게주인에게 편강을 주문하는 착한 딸이며 서른일곱에 나물을 배우고 마흔다섯에는 들깨가루를 배우고 오십 하나가 될 때는 우유와 떡을 배운 또한 알튀세르로 골머리를 앓는 이웃집 아주머니이며 동시에 400쪽이 넘는 발자크 평전을 읽는 지성인이다. 99편의 시 도처에서 발견되는 그녀의 페르소나는 이처럼 다양하다. 그러나 시인은 의도적으로 조작하거나 가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삶 속에서 우러난 관조와 경험을 근거한 진솔한 시작, 다이아몬드처럼 원석을 깎아 면각을 만들고 빛을 굴절해내는 빛나는 광휘. 그것이 시인의 페르소나다. 인공적이지 않은 진솔함이 우리 곁에 자연스럽게 내려 앉는다.
  • 나의 옥상 와이너리
  • 박홍 저 | 도서출판 달샘
  • 시대와 불화하는 사람들이 시인이다. 와인을 ‘신의 물방울’이라고 소개하면서 한동안 매스컴이 떠들고 있을 때 박홍은「우주포도주」라는 시로 등단하였다. 그는 조직적으로 거대하게 비약하는 이 와인의 세계에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가족끼리 포도주 담그는 즐거움을 우주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표현했다.「우주포도주」에서 「나의 옥상 와이너리」로 시제가 바뀐 것은 박홍 시인의 체험적 발화의 방식이 전체 시에 미치는 영향의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소박한 일상의 일면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시인이 열어가는 시의 세계는 자연친화적 물화의 과정이 담겨있다.「廉恥에 대하여」란 시에서 그는 구기자 열매를 따 먹으려다 배고픈 새들이 따먹는 것을 보고 廉恥가 보여서 못 땄다고 말한다. 그래, 만물에 대한 염치! 그것이 시가 아닐까? 하고.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무한질주하게 부추기는 우리 삶에 대한 그의 거부감은 우직하고 투박하게 표현된다.
  • 나의 해바라기가 가고 싶은 곳
  • 정영선 저 | 서정시학
  • 정영선 시의 고유한 예술적 윤곽이자 짜임새로 규정할 수 있을 잠재적 사건들의 현재적 형상화, 또는 아이온의 시간성에 뿌리박은 알레고리 이미지들은 시와 예술만이 일구어낼 수 있는 그 탁월성의 영역을 그가 깊게 신뢰하고 있는 데서 온다. 이는 시집 마디마디에 흩뿌려진 시인의 감각적 실존의 내력, 아니 그 시간의 깊이를 가로질러 지금-여기 우리들 몸 곁에서 팽팽한 탄력들로 휘감겨 오는, 그리하여 이미 지나가버린 감각의 파문을 생생한 에로스의 살갗처럼 활성화하려는 고고학적 사유와 이미지들을 통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난다.
  • 내 마음에 별이 뜨지 않은 날들이 참 오래 되었다
  • 주용일 저 | 오르페
  • 귀농하여 농사지으며 시를 쓰던 주용일 시인의 유고 시집이다.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은 대전에서 여러해 동안 시 창작지도를 진행했다. 뒤이어 제주도를 비롯한 우리 땅 여러곳을 떠다니다가 전북 진안의 능길마을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 시집에는 시인이 우리땅을 떠돌면서 쓴 시들과 귀농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쓴 시들이 망라되어 있다. 농사짓는 어려움 속에서도 시인이 찾으려 했던 어떤 정신의 가치와 깨우침들이 들어있고 그것을 무겁지 않고 담담히 읊으며 소요하는 시편들이 들어 있다.
  • 너무 멀리 왔다
  • 김남극 저 | 실천문학사
  • 김남극 시인의 두 번째 시집『너무 멀리 왔다』(실천문학사)가 출간되었다. 시인은 첫 시집 『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문학동네)를 통해 '오지(奧地)의 시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지나쳐버린, 혹은 잊고 있었던 하나의 세계를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망연히 쓸쓸히 고요히’라는 부제를 붙일 법한 이번 시집에서 김남극 시인은 주변적 삶에서 비롯되는 감정과 자신의 일상을 반추하며‘중심’에서 비켜선 채 살아가는 존재, 중년에 접어든 한 사내가 세월의 흐름 앞에서 느끼게 되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한 번은 본 듯한 얼굴”을 시집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천천히 걷다가 어디서 만나봄직한 시인의 시들은 빠르게 움직이는 삶과 경쟁하지 않는다. 첨단의 감각을 앞세워 세상의 질서에 맞서는 불화의 시학도 아니고, 상식적인 이해의 근거를 뒤흔드는 사유의 시학도 아니다. 김남극의 시는 삶에, 일상에 가장 밀착되어 있으면서 그것들을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지금, 여기에’ 가장 가까이 와 있는 시집이다.
  • 누가 흔들고 있을까
  • 박종국 저 | (주)천년의시작
  • 시작시인선 191권.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박종국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박종국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누가 흔들고 있을까』는 등단 20년을 눈앞에 둔 한 중진 시인의 시적 생애에서 일종의 중간 보고서 같은 위상을 가지게 될 책이다. 그동안 박종국 시학의 원천이자 질료는 ‘색깔’이었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빛’이었다. 시인은 사물들이 스스로 빛을 뿌리는 순간을 ‘색깔’이라는 고유한 현상으로 잡아내었고, 전혀 다른 존재론적 전환을 꿈꾸는 역易의 상상력으로 줄곧 형이상학적 비의秘義를 탐색해왔다. 그러던 시인의 궤적이 이번 시집에서는 경험적 직접성을 통해 농사일의 세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쪽으로 변모하였다. 구체적인 농사 체험들을 채집하면서도 그것들을 깊은 긍정의 눈으로 바라본 미학적 성과물인 셈인데, 가히 새로운 모음母音의 질서요 스스로[自] 그러한[然] 원리들에 대한 친화적 전회轉回라고 할 수 있다.
  • 눈물을 수선하다
  • 김미희 저 | (주)천년의시작
  • ‘천년의시인선’ 52번째 시집으로 김미희 시인의 시집 『눈물을 수선하다』가 (주)천년의시작에서 발간되었다. 그녀의 시에는 미국 이민 사회를 살아가는 외로움과 페이소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방인들이 겪는 삶의 애환이 조각보로 엮여져 있다. 김미희 시인의 ‘수선집’은 한인 이민자들의 치열한 일상과 타지 생활의 페이소스가 깃든 장소로서 보편 공감을 확보한다. 김미희 시인은 스스로를 ‘수선집 그녀’로 명명하며 자기 자신을 비롯한 한인 이민자들의 정체성, 즉 이방인이자 생활인이라는 존재 의식을 시에 담아낸다.
  • 니르바나의 바다
  • 박희진 저 | 서정시학
  • 분별심을 까마득히 여의고 있는 이 시인의 자유영혼은 감동의 소지가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소재로 삼아 황홀한 신화적 메타포로 살려낸다. 태초에 창조주가 그랬을까, 이 세상 만유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생명의 우주적 변주곡을 연주해 내는 것이다. 하여 그의 작품을 읽을 때에는 시인의 자유로운 음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울림에 ‘그냥 그대로’ 반응하려는 순수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시어 하나하나에서 사소한 비유나 상징을 찾으려 골몰하기보다는 시 한 편 한 편 또는 시집 한 권 한 권을 하나의 거대한 비유 또는 상징으로 받아들일 때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신화를 놓치지 않게 되고 영육의 경계, 시간과 공간의 경계, 현상과 본질의 경계에서 파동 쳐 오는 신비로운 곡조를 듣게 된다.
  • 다다
  • 서규정 저 | 산지니
  • 거칠지만 자유롭게 자신의 시 세계를 펼치는 서규정 시인의 시집. 등단 이후 일곱 번째 펴내는 이 시집에서 서규정 시인은 현실과 정치에 대한 비판적 시선,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를 투박하지만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집 첫머리의 「시인의 말」에서 “거칠고 투박하다는 것도 살고 싶다는 삶의 포즈다.”라고 말한다. 비록 시인의 시가 세상에 대해 거칠고 냉소적일지라도 그 목적지는 사람다운 삶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인의 시는 연륜과 결합한 서정적인 언어들로 피어난다. 예컨대 만개한 벚꽃이 떨어지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추억과 미래라는 느낌 사이/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는 그 이유 하나로도 너무 가뿐한”(「낙화」)처럼 생(生)의 가치를 긍정하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애잔한 감정을 “사랑이 살던 그 집의 울타리는 일생을 돌고 도는 강물이라서”(「그곳에 사랑이 살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듯 시인은 강렬하지만 서정적인 목소리로 세상에 다가가고 있다.
  • 달에서 여자 냄새가 난다
  • 이정오 저 | 시로여는세상
  • 시인은 거친 손을 내밀어 세상을 향해 악수를 청한다. 이 세상은, 세상 사람들은, 사물은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 그래도 내민 손을 거둬들일 수 없어 손을 내밀고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다. 시적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줄기찬 애정, 변함없는 관심, 섬세한 묘사… 이런 것들이 이 시집이 지닌 가치일 것이다. 몹시 수줍어하면서 이 비정한 세상을 향해 손(시집)을 내미는 시인의 순정에 독자는 따뜻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우리 태권도 용어에 <품새>라는 순수국어가 있다. 공격과 방어의 기본 기술을 연결한 연계 동작을 이르는 말이다. 시어의 운용도 이 <품새>의 연계 동작과 다르지 않다. 대상으로서의 사물, 사유, 감성의 행간을 이 품새의 날램이 제대로 채워져 있을 때 시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이정오 시의 이 <품새>가 지니는 연계 동작이 볼 만하다.
  • 대단한 놈들이다
  • 채지원 저 | (주)창비교육
  • 『대단한 놈들이다』는 공부 걱정은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리고 제 나름대로 놀 줄 아는 녀석들을 향한 응원가이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아이들이 움직이길 바란다. 하지만 어른들이 정한 규칙대로 움직이는 동안 아이들은 생기와 용기를 잃고 시들어 간다. 이 시집에는 그런 아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고민하는 선생님이 등장한다. “전 과목 무시하고/그대로 살” 수도 있다고 응원하는가 하면 공 놀이쯤은 맘껏 하는 학교를 꿈꾸며 아이들과 함께 뛴다. 공부에 치이고, 잘못한 것 하나 없이도 늘 조마조마해하는 청소년들. 하지만 그 곁을 지키는 선생님이,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에게도 작은 힘이 생길 것이다.
  • 데자뷔
  • 박이도 저 | 도서출판 시와시학
  • 시집 곳곳에서 보이는 기독교적 윤리나 성서와 관련된 시어들은 시인이 얼마나 기독교적 지식과 사고에 깊은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종교적 사유의 바탕아래 어쩔 때는 ‘나’를 부정하면서, 또는 ‘나’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자신을 성찰해 나아가는 모습이 주목된다. 특히 작가는 주체인 ‘나’와 유체이탈로 객체화된 ‘나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서로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며 자기 치유의 모습 또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우리는 한편으로는 씁쓸하지만 깊고 진한 여운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런 종교적인 것만 바탕에 두는 것이 아닌 자연을 관찰하며, 주변인을 바라보며, 혹은 가족, 역사적 인물 등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시적화자의 내면이 더욱 단단해지며 강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성장 속에 우리들 또한 큰 감명을 받을 수 있다.
  • 따뜻한 적막
  • 이태수 저 | 문학세계사
  • 중진시인 이태수의 열세 번째 시집 『따뜻한 적막』은 ‘적막’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마음의 그림들을 진솔하게 보여 준다. 『따뜻한 적막』의 시편들은 자연과 어우러진 심상 풍경들을 겸허하고 신성한 언어로 감싸 안는가 하면, 적막한 현실 너머의 따스한 풍경에 다가가려 하거나 그 풍경들을 끌어당겨 깊이 그러안으려는 형이상학적인 꿈에 주어진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4년 겨울에서 지난해 가을까지 한 해 동안 쓴 시 가운데 69편을 골라 이번 시집에 4부로 나눠 실었다는 시인은, 마음을 내려놓고 비우노라면 적막마저 그윽해진다며 “이 조촐한 시집을 마음 가난하고 적막한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참을 참으로 규정해 주는 궁극적인 근거가 존재한다. 나 자신까지 나를 떠난다 하더라도 근거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한 나는 나의 현재를 보람 있게 가꾸고 나의 세상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침묵과 따뜻한 적막 속에서 그 근거 자체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다. 나아가 비우고 지우고 내려놓는 감사의 기도가 환해지고 적막 속에 타오르는 따뜻한 불꽃을 끌어안게 된다.
  • 뜨거운 달
  • 차한수 저 | 서정시학
  • 차한수의 시는 기교적으로는 섬세한 세공주의자다운 면모가 엿보이기도 하고, 정신적으로는 고독한 결벽주의자 같은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 그의 시에는 자아도취적 나르시시즘의 흔적이 깃들여 있기도 하고 치열한 유미주의적 자세가 드러나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시적 특성에 겹쳐지는 정서적 바탕은 고독감과 애상성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그러니까 고독한 이미지스트 혹은 고립된 결벽주의자의 초상화라 할 수 있고, 그 고독감과 고립감을 꼼꼼하게 조립하고 재현하여 보여주는 섬세한 언어적 세공품이라 할 수 있다.
  • 뜨거운 자작나무 숲
  • 안명옥 저 | 리토피아
  • 제1부 13편의 시 / 제2부 14편의 시 / 제3부 13편의 시 / 제4부 13편의 시 / 발문 한명희 시인 / 발칸의 장미, 명옥에게 / 명옥이의 시세계가 온통 ‘상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전 시집
  • 루머처럼, 유머처럼
  • 박해성 저 | 현대시학
  •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으로 등단한 박해성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언뜻 보면 그녀의 시는 억압과 인고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 나라 여성들의 지난한 삶을 마치 내림굿 받는 새내기 무당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통곡 같은 사설로 이야기하고 있어 한 인간의 소서사를 말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 이야기의 뿌리를 곰곰 더듬어 올라가 보면 먼먼 선사시대 혹은 비화가야쯤의 이야기까지 만져지는 大敍事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의 시의 뿌리는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여름날의 칡넝쿨처럼 질기고 길다. 그의 시의 매력을 또 하나 들자면 두둑한 뱃심과 반골기질이다. 언듯 보면 한탄이나 넋두리 같기도 한 그의 말들을 자세히 보면 바닥을 쳐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분노가 있고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약자들의 외침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잘 발달된 젊은 사내의 근육처럼 탄력이 있다.
  • 마른장마
  • 이상호 저 | 시로여는세상
  •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상호 시인의 시집이다. 많은 시인들이 서정성의 메커니즘을 따른다. 도덕적으로 선하거나 미적으로 아름답게 시를 쓰거나 시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서정의 함정에 빠진다. 이상호 시인의 시는 여기에서 멈춘다. 그리고 진리 혹은 실재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이 의도는 자아의 자기 회귀를 막아내고 서정성을 보다 포괄적으로 ‘시적인 것’으로 끌어낸다. 진리와 실재는 그렇게 선하거나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 시사의 면면한 흐름 속에서, 이상호 시인은 오래된 서정의 문법을 내면화하고 이를 변용시킨 우리 시대 뛰어난 서정 시인의 한 사람이다.
  • 말하라, 어두워지기 전에
  • 노혜경 저 | 실천문학사
  • 1991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해 시집 『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 『뜯어먹기 좋은 빵』, 『캣츠아이』를 펴낸 노혜경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됐다. 이번 시집에는 안티조선운동 멤버, 노사모 대표,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등을 지내며 전방위적 사회・정치 활동을 펼쳐온 시인이 역사와 실천의 배리에 몸부림치며 구원의 징표를 탐색한다.
  • 맹산식당 옻순비빔밥
  • 박기영 저 | 모악
  • 25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을 펴낸 박기영 시인은 원초적 생명력인 야성을 지닌 시인이다. 평안도 맹산포수였던 부친의 삶이 ‘살림’을 미덕으로 하는 생명성의 실현이었다는 것, 그러한 동물적 세계가 한편으로는 ‘옻’의 식물성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생명성으로 구현되었음을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맹산포수로서의 동물적 감각과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의 식물적 감각의 스펙트럼은 ‘사내’의 억센 힘과 ‘가시내’의 섬세한 정서를 바탕에 둔 교감의 세계를 추구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에 실린 50편의 시들이 모두 미발표작이라는 사실은, 이 시들이 아직 터지지 않은 불발탄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우리에게 투하된 이 시편들은 잠재된 폭발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으며 민감한 뇌관을 장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북방의 산협과 고원지대를 감싸 안는 서늘한 서정이며, 곰살 맞고 웅숭깊은 설화적 세계를 돋을새김 하는 서사인 것이다. 분단과 실향, 상처로 얼룩진 근대의 얼굴들을 떠올리면서, 서럽고 외롭고 그립고 안타까운 원시와 야생에 바치는 시편들인 것이다.
  • 먼 곳으로부터 먼 곳까지
  • 전성호 저 | 실천문학사
  • 2001년 『시평』으로 등단해 시집 『캄캄한 날개를 위하여』, 『저녁 풍경이 말을 건네신다』를 펴낸 전성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먼 곳으로부터 먼 곳까지』가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지난 15년간 한국과 미얀마를 오가며 두 나라의 현실을 온몸으로 경험한 시인은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 익숙해져버린 현실의 아픔을 다시 보여준다.
  • 멍게 먹는 법
  • 이동순 저 | 도서출판 애지
  • "우리시대 대표적인 서정시인 이동순 시인. 노장사상을 바탕으로 한 생태적 상상력과 겸허의 미덕이 융숭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이동순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춤의 원형적 리듬과 삶의 통찰, 사물과 존재의 원리적 사유 등이 하나로 어우러진 62편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우리 주변의 일상적 삶 속에서 아주 평범하고 하찮은 것들이 우주적 질서에 의거한 원형적 리듬으로 동작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동작이나 원리는 인간에게 항시 구체적이고도 비유적 메시지를 송신해주고 있다는 깨달음은 세속적 일상에 골몰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인의 메시지인 듯하다. 지난해 42년 근속해온 영남대학교 교수직을 정년퇴임으로 마무리한 시인은 퇴임 후에도 대구 계명문화대학교에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를 열어 전시관 및 연구공간을 조성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사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자료수집과 연구 및 저널리즘 활동, 강의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이번 시집의 근간인 춤과 음악의 원형으로 그려낸 시편들은 그의 오랜 관심과 몰두에서 태동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고기가 달아나고 종만 댕그랗게 남은/풍경 하나가 있었습니다/그 쓸쓸한 모습을 보며/내가 물고기를 만들어 달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어느 비 오던 밤/나는 청동물고기를 만들어/비늘도 새기고 지느러미도 새기고/마지막엔 눈알을 새겼답니다”(「풍경소리」 부분) 이처럼 그는 줄곧 자연과 감응하고, 작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따듯한 시성으로 참된 진리에 도달하는 길을 추구해온 시인이다. 생의 한 구간을 정리하고 또 새로운 구간을 시작하는 지점에 서 있는 지금,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하는 시인. “기운차게 뱃고동 울리며/ 항구로 배들어 오네/먼 바다에서 꼬박 밤새운 어선들/ 갑판의 멸치더미/ 은빛구두를 신고 춤을 추”는 「미조항 블루스」, “술집 작부 몇이 둘러앉아/수상한 물안개 데리고 노”는 「선술집 탱고」등 슬프지만 맑고 푸르른 서정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릴 듯하다. 더불어 시인의 발자국에 은은한 봄향기로 피어나리라 기대한다.
  • 몇 명의 내가 있는 액자 하나
  • 여정 저 | (주)민음사
  • 2011년, 등단 13년만의 첫 시집 『벌레 11호』로 문단과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시인 여정의 두 번째 시집 『몇 명의 내가 있는 액자 하나』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에서 기호의 미끄러짐, 명사(실체)와 동사(운동)의 자리바꿈을 선언한 시인은 이제 보다 구체화된 텍스트상의 운동성으로 선언을 실천한다. 여정의 운동은 신인상주의의 선도적 화가 조르주 쇠라의 기법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쇠라가 선과 색채에 관한 과학적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여정 또한 단어와 기호를 전면적으로 재배치하여 혼합한다. 본래의 뜻과 혼합되어 생성된 뜻이 혼재된 그의 시집 『몇 명의 내가 있는 액자 하나』는 제목 그대로 세계를 수많은 점으로 찍어 놓은 ‘액자’이면서도 끝없이 변화하고 흩어지는 의미가 ‘몇’이나 담긴 ‘나’이기도 한 것이다. 이 액자 속의 나는 문장의 구성, 띄어쓰기, 기호의 쓰임 등에 대한 고정된 관념을 무화시킨다. 물질의 구성요소를 쪼개어 원소를 구분하고 다시 원소끼리의 조합으로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는 초기 과학자의 호기심어린 연구처럼, 여정은 한국어를 쪼개고 구분하고 조합하는 실험을 거듭한다. 세상에 없던 전면적인 언어 실험인 것이다.
  • 모두 허공이야
  • 김종해 저 | 북레시피
  • 시력 53년째를 맞는 김종해 시인(75)의 시집 『모두 허공이야』는 삶과 죽음에 대한 경험적 통찰과 따스하고 아름다운 서정으로 가득 차 있다. 각 시편에는 죽음에 관한 시인의 여러 가지 감회가 과묵하지만 견고한 언어로 녹아 있다. 한 작품의 의미는 단독으로 그 의미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대 다른 시편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의 층이 두터워지기도 한다. 시의 산문화가 두드러지고 절제 없는 의식의 넘나듦이 대세를 이루는 시단의 형세 속에서 과장과 요설 없는 시인의 세계는 고유의 간곡함으로 독창적인 서정세계를 구축한다. 이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삶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애도와 그리움이다. 하지만 이 시집에서 느껴지는 죽음은 슬프거나 어둡지 않다. 시인이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피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응하며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축복인 것을 늘 잊지 않는다.
  • 모래 마을에서
  • 김광렬 저 | 푸른사상사
  • 모래에 파묻힌 마을에서도 집요하게 뿌리를 내린 사람들처럼 거칠고 메마른 세계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들을 노래한 시집. 시인은 그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누에고치가 집을 짓듯 한 땀씩 그려내었다. 이렇게 태어난 시 작품들의 한 행 한 행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네 삶과 현실에서 지독한 외로움과 상처의 언어가 휘발되면서, 우리 스스로 근원적 자아를 만나는 것 자체를 회피하고, 심지어 자기 탐구를 근대의 저 편협하고 과잉된 주체의 동일자(同一者)로 수렴하는 것과 착종시키더니 자아 성찰의 건강성에 대한 심각한 왜곡을 낳고 있음을 고려해볼 때, 김광렬 시인이 발견하고 있는 축축하고 서늘한 이 도저한 내적 공간이야말로 시인이 간구하는 절실함의 언어가 생성되는 신성한 곳이다. 이곳은 민주주의를 위한 쟁투의 공간이며, 아름다운 것을 향한 그리움의 공간이고, 행복을 향한 치유의 공간을 다원적으로 함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관념과 허구로 구축된 게 아니라 시인이 나고 자라난 제주의 참담한 역사의 고통과 식민주의 상처를 망각할 수 없는 역사의 아픔을 공명하고 있다.
  • 목련을 읽는 순서
  • 이경교 저 | 문학의전당
  • 이전 시집에서 현실과 피안을 함께 끌어안고 나아가는 시정신을 보여준 이경교 시인은 이번 시집에 이르러 사뭇 다른 시세계를 보여준다. 시인이 시도하는 새로운 시적 모험은 “오브제와 한몸이 되는 것, 내가 대상 속으로 틈입하는 것, 나와 너의 사이가 사라지는 것!”으로서, 이는 언어를 통하여 언어의 한계를 넘어 대상과 황홀하게 융합하고자 하는 시의 꿈을 현실화하고자 하는 것, 즉 “언어의 극한점을 꿈”꾸는 것이다. 시인 스스로 이것이 얼마나 “무모한 꿈”인지를 알면서도 모험을 감행하는 것은 그런 ‘무모함’이 시작(詩作)을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동케하는 까닭이다. 비록 예정된 실패일지언정 시의 꿈에 다가가려는, 실패의 산물로서의 탄생하는 시편들. 하여, 독자들은 이 실패의 시편들을 통해 꿈 한 자락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한계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를 넘어서고자 하는 언어의 움직임, 그 한계와 극복의 긴장에서 피어난 그의 시편들은 끝끝내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서 대상과 융합하고자 한다. 도달할 수 없는 꿈을 향한 열망으로 빼곡한 이 시집은 가장 환하게 핀 순간 지는 목련꽃과 꼭 닮은 시와 시인의 운명에 관한 아름다운 기록이다.
  • 몰락경전
  • 김수우 저 | 실천문학사
  • 1995년『시와시학』신인상으로 등단한 김수우 시인의 신작 시집 『몰락경전』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은 ‘잊혀진 우물에 두레박을 내리는 숭고한 영혼들의 용감한 몰락’을 넌지시 고하는 것으로 시문을 연다. 죽어서 빛나는, 죽어서 살아 있는 세계가 바로 시(詩)임을 깨달았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시인은 고백한다. 시집은 ‘익숙한 주문(呪文)처럼 내리는 비’ 에 젖는 줄도 모르는 존재들의 몰락에 대해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이 시집을 통해 모순된 문명 속에서 모든 몰락의 ‘이상’과 ‘심연’의 모습을 탐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바람의 머리카락
  • 홍성란 저 | 고요아침
  • "제1회 조운문학상 수상작품집 <바람의 머리카락> “황진이의 시심(詩心)을 전수받은 시인” “칼날 위를 달리는 시인” 일찍이 우리의 황진이가 역순종횡(逆順縱橫)에도 자재한 삶을 무념무작(無念無作), 시조로 보여주었다면 홍성란은 황진이의 시심(詩心)을 전수받은 검인상주(劍刃上走), 칼날 위를 달리는 시인이요 그의 시조는 일조백련(一條白練), 한 자락의 흰 비단이다. - 설악 무산 스님
    홍성란의 시적 언어는 삶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솔솔 부는 봄바람 같고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휘영청 밝은 달과 같다. 시적 절제와 긴장이 만들어내는 정제된 형식미와 능청스러운 어법으로 펼쳐지는 사설의 파격미는 득음의 경지에 도달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보여주는 현대적 감성은 우리 시조가 나아갈 길을 환하게 밝혀 준다. 우리 현대시조의 미래가 홍성란으로부터 새로운 탄력을 얻게 되리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일이다. - 최동호(시인ㆍ문학평론가ㆍ고려대 명예교수)
  • 바람의 사원
  • 김경윤 저 | 심미안
  • <적막한 삶을 어루만지는 바람의 시학> 해남 땅끝 시인 김경윤이 8년 만의 시적 성과를 아울렀다. 그의 시가 독자를 ‘근원’, ‘궁극’, ‘영혼’의 영토로 인도하는 힘은 그 밑바닥에 가장 비루하고 아픈 시인의 체험과 저잣거리의 희로애락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혈육과의 마지막 이별을 노래한 시를 보자. ""한잠, 자고 나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그 순간, 너의 눈시울은 물방울에 젖은 나뭇잎처럼 부드러워졌고/큰방으로 건너온 나도 한잠이 들었던가, 깨어 보니,/너는 이미 깃털같이 가벼운 몸뚱이만 두고/새처럼 피안으로 날아가고 없었지/인생은 한바탕 꿈이라는데, 짧은 한잠 지나면/정말,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한잠」)"" 유성호(문학평론가)는 그의 시를 “가장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시간의 형식을 경험하게 한다”고 했고, 곽재구 시인은 “고요한 남녘 사원의 시간들을 읽어 가는 동안 지리멸렬한 생이 따스해지는 영혼의 순간이 있었다.”고 평했다. 이형권(문학평론가)은 “언어의 오체투지로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했다.
  • 발톱 다듬는 여자
  • 오세경 저 | 도서출판 황금알
  • 오세경의 시는 부재를 꿈꾸는 자의 시선에 가 있다. 부재는 사람들이 지는 고정관념과 편안한 자세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암중모색을 더듬는 자의 끝없는 희생과도 같은 것이다. 오세경은 결코 쉬지 않는다. 그의 꿈은 벽화처럼 단단한 암석을 끌어안고 있으며, 한없이 부서지고 무너진 자리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기를 소망하고 고집하는 그런 믿음이 저변에 깔려 있다. 「5 톤 트럭」에서 “나는 오로지 바퀴가 아로새길 무늬들만 상상해/ 상상계는 참 넓고도 아늑하지/ 찰나적이야 구체적이야 오히려 사실적이야”하고 외치는 부재에의 끈질긴 집념이 이 시를 한층 더 빛나게 성숙시킨다. “오-,/ 내게 분홍신을 돌려줘”의 「당신은 변온동물이므로」, 또는 “가벼움과 함께 무심함과 함께 또한 정념과 함께/ 나는 저 타악의 리듬처럼 잠깐의 떨림 텅 빈 고요”의 「기타 등등」처럼, 사유가 무르녹는 시점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 시집이 그의 개인적 체험을 구체화하는 독서량과 부재에의 탐닉, 기존의 틀과 형식을 벗어난 자유로움으로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진정 사랑받기를, 나는 바란다. - 이수익(시인)
  • 벽암록을 불태우다
  • 노태맹 저 | 삶창
  • 노태맹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은 『벽암록』을 읽으면서 시작된다. 게송이기도 하고, 익살이기도 하고, ‘깨달음’이라는 도그마에 대한 주장자(柱杖子)이기도 한 『벽암록』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여러 가지로 모호한 텍스트이다. 노태맹 시인이 그 『벽암록』을 읽으면서 시집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떤 은유이다. 어떤 은유? 바로 우리가 사는 화탕지옥에 대한 은유. 아니 화탕지옥을 살아가는 시인 노태맹 자신에 대한 은유. 『벽암록』을 옮겨놓은 듯한 시들을 쓰면서 시인의 내면에서 무엇이 들끓고 있는지 알아채기에는 그래서 쉽지 않다.
  • 봄바람, 은여우
  • 이은봉 저 | 도서출판 b
  • 이은봉 시인의 신작 시집 <봄바람, 은여우>다. 1984년 등단한 이래 이로써 10번째 시집을 펴낸다. 이은봉 시인의 시는 예나 지금이나 삶의 현장을 토대로 구축해왔다. 개인적 체험과 공통 현실은 구체적 삶을 조성하는 두 가지 핵심요소인데 시인의 시적 개성은 이 둘이 거의 겹쳐 있는 데에서 발생한다. 이번 시집도 예외는 아니나 형이상학적 사유가 두드러지게 전면에 드러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시인의 연륜이 시적 세계를 삶에 대한 회상과 성찰의 태도로 이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바람, 은여우>는 가볍고 경쾌하다. 이은봉 시인은 이번 시집을 ‘바람의 시집’으로 읽어주기를 기대한다. 문학평론가 김종훈은 해설에서 이 시집의 “첫 번째 특징은 변화무쌍한 바람과 맞물려 시집이 지향하는 의미가 어느 하나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일러준다. 두 번째 특징은 평면에 깊이를 확보했던 것처럼 차원을 하나 늘려 봄의 풍경에 다른 시간이 있다는 것을 환기한다. 바람은 여기에서 종잡을 수 없는 실체이면서 동시에 다른 세계의 존재를 암시해주는 전달자이다.”라고 요약하고 있다.
  • 분월포
  • 서상만 저 | 도서출판 황금알
  • 서정이 시의 기본이라 하는 것은 너무 피상적인 말이다. 서정이라 해도 그것이 그리는 대상이 아니고 들이쉬고 내쉬는 숨의 몸통이고 살이 움직이는 진동일 수 있을 때 그 자리는 삶의 전부일 수 있다. 삶의 자리는 도시나 산천만이 아니고 목쉰 듯 컬럭대며 몸살 앓는 바다, 발버둥치는 샛바람 소리로 우는 바다, 해변 돌무덤 뒤에 모로 앉아 우는 갈매기, 사람들도 나도 사시장철 물두렁에 이는 파도로 우는 분월포 고향 마을. 여기에서 울음은 하나의 경탄이다. “천지가 다 잠자는 밤/삼대리 마애불 깨워/經을 같이 읊자는/저 풀벌레 소리” 이것도 영원에 이어지는 소리다. 작은 목로에 앉아 누리끼리한 사기잔의 잔주름을 보고 “주모에게 물었다/이 술잔 좀 됐네?/기거 우리 죽은 영감 먹던 기유!” 하는 대화, 이것도 영원에 이어지는 삶의 한 구체적 사건이다. 자연 속 가난한 삶들에 관해 서상만 시인은 말한다. “삶이여/이것도 역사라고 받아 적진 마라”(자서 2). 그러나 하도 제대로 되어가는 일이 없는 오늘의 세계 현실을 보자. 비인간적 물질주의와 패권 싸움과 끝없는 거짓이 범람하는 공간에서 무엇을 역사라고 기록할만한 것이 있는가. - 구중서(문학평론가)
  • 분홍 나막신
  • 송찬호 저 | 문학과지성사
  • 송찬호의 다섯번째 시집이다. 송찬호 시의 가장 손꼽히는 특성은 시어의 신선함이다. 그 언어의 생동은 현란한 수사의 꾸밈이 아닌 날것으로 데려다 놓음으로써 그것들이 시 속에서 스스로 상징이 되고 비유가 되는 움직임을 찾아 가게 한다. 시들의 제목, ‘장미’ ‘냉이꽃’ ‘상어’ ‘참새’ ‘튤립’를 보아도 그렇고, 시 속의 문장들도 마찬가지다. 언어를 도구화하지 않고 그것 스스로 놀 수 있는 판을 벌여준다. 익숙한 대상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인습화되고 낡은 발견이 아닌 새로운 발견을 선사한다. 대상을 발견하고, 말 앞에서 물러서며, 누구도 보지 못하는 것을 담아내는 이 시들이 담아내는 재미있는 풍속과 세상에 대한 재치 있는 반격은 리듬과 템포를 더해 무엇보다 잊고 있던 시 읽는 즐거움을 되찾아줄 것이다. 그것이 다시 한 번 송찬호 시집을 들어야 하는 이유다.
  • 붉은 벽돌
  • 최해돈 저 | 도서출판 지혜
  • 최해돈 시인은 충북 충주에서 출생하였고, 2010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했다. 충북문화재단 및 2016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시집으로는『밤에 온 편지』『기다림으로 따스했던 우리는 가고』『아침 6시 45분』『일요일의 문장들』『붉은 벽돌』이 있다. 최해돈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인 『붉은 벽돌』은 현란한 말의 수사학 너머로 미지의 인간학적 현실을 응고시켜 단순한 말의 향유를 인륜적 삶으로 고양시키고 있다. 문장의 깊이 혹은 무의식의 심연에 가라앉은 사랑과 슬픔의 행로. 최해돈 시인에게 말은 “생사의 그 숭고한 틈”(「전송되는 아스팔트」)에서 생성되는 미지의 기호이자, 반드시 의미의 행간에 위치시켜야만 하는 문장의 정체이다.
  • 붉은 서재에서
  • 노창수 저 | 한국문연
  • 시야를 좁히던 터널이 끝나자 짙은 하늘과 함께 시의 장엄이 왔다. 씨앗을 넣을 광주리(筐)를 들고 둔덕을 고르다 호미질이 바뀌고서야 놀란다. 흩뿌릴 바구니 테를 붙잡은 검은 손, 꺾인 고통을 깨닫는 요즘이다. 시는 아이디어로 쓴다는 믿음으로 촘촘한 시를 원했으나 마음뿐이다. 시집 일곱 번째, 등단 43년째, 하지만 아직도 옹알이 중이다. 혜량하시길 빈다. - 2015년 9월 무등 아래 상래문학방에서
  • 비의 후문
  • 정수자 저 | 문학의전당
  • 정수자의 시편들은 때로 하늘을 향해 청청하게 뻗은 금강송의 골법으로 읽히기도 하고, 또 때로는 세상의 그늘들이 내는 울음을 으늑히 껴안는 범종의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1984년 세종숭모제전국시조백일장을 통해 등단한 이래 한국 현대시조의 장에서 새로운 언어적 이정표를 세워온 시인의 길은, 그 자신이 “너무 이른 사람”으로 평가한 ‘나혜석’의 그것처럼 “선각”의 여정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계에 대한 장엄한 사유와 서정을 탁월한 언어적 질감으로 풀어내고 있는 시인은, 그러나 세상의 흠결조차 “심오한 전언”으로 간파하고 “받드는” 겸허함의 자리로 자신을 낮춤으로써 더욱 유현함으로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심목(心目)이야말로 시의 언어로써 부박한 이 시대를 건너고 붙드는 근원으로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 빈 배처럼 텅 비어
  • 최승자 저 | 문학과지성사
  • 최승자.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을 누구보다 치열하고 독한 언어로 품어내며 우리들의 한 시대를 순식간에 잠식했던 80, 90년대에도, 쇠약해진 육체의 감각에 박힌 어떤 체험들을 “뼈만 남은 이 가난한 언어”(황현산)로 말해온 2000년 이후에도 여전히 변함없는 우리들의 시인. 그의 근황을 담은 시집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11년 만에 선보였던 『쓸쓸해서 머나먼』(2010)과 대산문학상, 지리산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묶어낸 『물 위에 씌어진』(2011)에 이은 여덟번째 시집이다. 매번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나’라는 ‘빈 감방’에서 그럼에도 탈출하려 안간힘을 써온 그의 일기가 92편의 시로 묶였다. “병든 세계에서 병이 들어 하릴없이 살아 있는 자가, 살아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기 쉽지 않은 자가 여전히 시를 써서 생존을 증명하고 있다. 살아 있기 때문에 가까스로 새로이 시를 쓴다.”(김소연)
  •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 김참 저 |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김참 시인의 네 번째 신작 시집. 김참 시인은 1973년 경남 삼천포에서 출생하였으며, 1995년 <문학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미로여행> <그림자들>이, 저서로 <현대시와 이상향>이 있으며, 현대시동인상을 수상했다. 김참 시인은 등단 이후 지금까지 시간을 멈추고 공간을 휘어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여러 매혹적인 미로들을 제시해 왔다.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또한 시집에 실린 「백일몽」 연작들이 증거하듯이 분명 꿈의 세계다. 그런데 “백일몽이란 일종의 자각몽이다. 그것은 꿈을 꾸고 있다는 점에서는 잠이고, 꿈을 자각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각성 상태다. 그것은 수면이면서 불면이다.”(이현승 시인의 추천사) 즉 꿈을 꾸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의 세계가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이다. 그런데 김참 시인은 그러한 백일몽으로부터 완전히 깨어나길 원하거나 그 반대로 더더욱 꿈속으로 침잠하길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김참 시인은 꿈의 영역과 현실 세계를 미려하게 뒤섞는다.
  • 사과 속의 달빛 여우
  • 윤정구 저 | 도서출판 달샘
  • 윤정구의 이번 시집은 시를 통해서 사물의 본질적인 존재와 특성을 찾아내고 확장한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지물地物에서 벗어나 가슴을 쩡 울리는 지물紙物로 새롭게 보아내는 것이다. 봉인된 돌멩이가 부화하고 그 날개로 날아오른다거나, 사과가 사과나무로 가는 길은 얼마나 오랫동안의 궁리 끝에 알아냈을까? 시인의 시선에는 징후를 예견하는 연금술이 가득하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문장들마다 기발한 문 하나씩 틔워놓고 있다. 시인의 사과에는 여우가 캉캉 울고, 손전등이 어둑한 기억을 들추어 오래된 옛일을 비추기도 하는 것이다. 시인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시공時空을 아우르며, 일생을 끔찍한 기적이라고 하찮은 듯 장엄莊嚴함을 비벼 끈다. 무량無量으로 가득찬 시인의 내면은 우주의 끝을 개의치 않는 경지다. 그의 중심에는 늘 새로움을 찾는 역동성이 팽팽하고 열정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사물의 입
  • 마경덕 저 | 가림토
  • 마경덕의 시는 오랫동안 사물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삶의 맥락과 겹쳐놓는 이른바 관찰의 시학을 견지해왔다. ‘관찰’이란 그 행위의 주체와 대상 사이의 일정한 거리를 전제하며, 예술에서 그 ‘거리’의 존재는 시적 진술이나 정물화 등에 익숙하면서도 안정적인 구도를 가져다준다. 하지만 예술의 역사는 소위 주체와 대상 사이에 전제되는 이 거리, 그것에서 기원하는 안정적인 구도가 신체적인 지각의 진실을 배반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관행/상식이라는 이름의 권력 효과였음을 비판해왔다. 그런 점에서 현대시가 관찰의 안정감보다는 그 거리를 폭력적으로 무화시키는 질감의 언어를 모색해온 과정은 주목을 요한다. 이 시집을 펼쳐 든 독자로서 우리 또한 시인의 언어가 ‘관찰’에 머물고 있는지, 주체와 대상 사이의 거리를 횡단하여 사물을 질감의 차원으로 개방하는지
  • 새벽이 오는 소리
  • 정상석 저 | 도서출판 개미
  • 정상석 『새벽이 오는 소리』는 특이한 용기와 기백이 시에 묻어난다. 춘천시 자립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하였고, 산문과 시를 넘나들며 자신의 기량을 여과없이 반영된 긍정적이고 자존감이 강한 시인이다. 벌써 두 번의 시집 상재는 그의 이력이 시적으로 탄탄하고 시가 보여주는 긍정성은 시를 읽는 사람들을 편하게 만든다. 세상은 돋보기에 굴절된 자신만의 에너지를 통해 나타난다고 전제한다면 정상석의 시는 채굴되지 않는 언어들의 원석임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세상이 왜곡되어도 자신의 작품성과 살아가는 삶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비늘처럼 살고 있는 용기가 사람들에게 또 다른 도전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 새소리 택배
  • 이혜선 저 | 문학아카데미
  • 최근 이혜선 시인의 시 쓰기는, 시인 스스로 후기에서 밝히고 있듯이, 자타불이다. 이러한 명제가 너무 뚜렷할 경우 시가 딱딱하고 앙상한 경우도 흔히 있는 일인데, 그의 시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은 이러한 생각이 머리로 얻은 것이 아니라 삶의 실제를 통해서 익힌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이것과 저것이 떨어져 있지 않다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는 그의 시들은, 그래서 가파르지 않고 넉넉하며, 모질고 사납지 않고 따뜻하며, 서로를 가르지 않고 한데 모은다. 얼피 보면 그의 시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속에서는 날카로운 비수가 번득이고 차디찬 샘물이 뿜어져 나온다. 서로 남이 아니고 다르지 않은 사물의 한가운데 있는 자기라는 존재는 누구이며 무엇을 향해 가고 있으며 불이인 타자와는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길찾기가 있기 때문이다. 무거운 주제들을 소화해 내고 있는 시를 빚는 솜씨도 빛난다. - 신경림(시인)
  • 생활이라는 생각
  • 이현승 저 | (주)창비
  • 생동하는 몸의 세계를 꿰뚫는 투명하고 냉철한 현상학적 시선과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미지로 독특한 시세계를 펼쳐온 이현승 시인의 세번째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이 출간되었다. 『친애하는 사물들』(문학동네 2012) 이후 3년 만에 새롭게 펴내는 이번 시집은 “몸을 위한, 몸에 의한, 몸의 것일 수밖에 없을 나날의 삶의 육체성이 어떻게 조직되고 통제되는가를 바닥까지 들여다보려는 몸의 헌정서”(이찬, 해설)이다. 사물을 골똘하게 바라보는 날카롭고 지적인 통찰과 예민한 감성이 어우러진 가운데 논리정연하면서도 단정한 시편들이 신선한 공감을 일으키며, 새로운 각도로 일상을 들여다보며 세상의 양면적 속성과 존재의 본질을 파고드는 철학적 사유가 빛나는 위트와 유머 속에 슬픔이 깃든 삶의 아이러니가 돋보인다.
  • 서랍마다 별
  • 강서완 저 | 도서출판 지혜
  • 강서완 시인은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고,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으며, 2008년 {애지}로 등단했다. {서랍마다 별}은 그의 첫 시집이며, ‘탈주의 시학’으로 설명을 할 수가 있다. ‘천 개의 서랍이 있고 천 개의 서랍마다 별이’ 피었지만, 그러나 그 별들은 결코 지지 않고 그 빛을 발한다. 천 개 의 서랍 속에서도 비가 오고, 꽃이 피고, 새들이 울고, 수많은 별들이 그 빛을 발한다. 그의 탈주는 불가능을 꿈꾼다는 점에서는 이상적이고,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는 현실적이다. 요컨대 이 세상 밖의 천국이 아닌 이 세상 안의 천국, 즉 감옥(서랍)에서 감옥 속의 삶을 살며, 그 감옥을 천국으로 만드는 탈주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 서리꽃은 왜 유리창에 피는가
  • 임윤 저 | 푸른사상사
  • 시집 『서리꽃은 왜 유리창에 피는가』에서 시인은 고래와 반구대가 위협받는 동해 바다에서부터 눈보라에 두들겨 맞는 러시아와 티베트를 거쳐 북한과 인도에 이르기까지의 사람들과 동행하며 아픔을 함께한다. 꽉 닫힌 유리창에 얼어붙은 서리꽃처럼 서정이 죽어버린 현실에서 진실의 가치를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독자의 가슴을 진중하게 울린다. “서정이 죽어버린 시간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가”라는 독백에서도 보듯이, 서정의 죽음을 딛고 꼿꼿이 일어서는 새로운 시적 감성은 시인의 몫일 수밖에 없다. 불온한 현실의 뿌리에 낙원의 유전자가 있었기에 우리는 세상을 개탄하는 마음의 결에서도 일말의 가능성을 점치게 된다. 우선 죽어버린 서정의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는 데서 그것은 시작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임윤의 시는 세상의 온갖 죽음과 눈물과 탄식을 끌어모아서 이들을 달래고 한바탕 굿을 벌이는 진혼굿이 아닐까. 더러 황폐한 들판에서도 장미는 피듯이, 진창의 세상에서도 진실의 가치는 녹슬지 않다는 사실을 시인은 시로써 증거하는 듯하다.
  • 세상의 모든 최대화
  • 황유원 저 | (주)민음사
  • 황유원의 시편은 아주 작은 데서 시작해서 가장 큰 것으로 나아가며 몹시 거대한 것을 놓아두고 매우 미세한 것을 발설한다. 자칫 혼란한 요설로 비칠 수 있는 이러한 작업 태도를, 황유원은 단단한 사유를 바탕으로 하여 두려움 없이 시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행하고 있다. 시인은 일상적 풍경을 서술하며 난데없이 돈키호테의 풍차가 되길 소원한다. 텅 빈 운동장에 비가 내리는 일에서 완전한 소멸을 발견한다. 심지어 빵 조각에 달라붙은 개미에게서 지옥의 풍광을 잡아채기도 한다. 무엇으로든, 무엇에서부터든 감각은 발생하며 그것은 상상의 영역 바깥에까지 솟아오른다. 팽이의 윗면에 그려진 문양이 팽이의 운동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미지가 되는 것처럼 스스로 팽이가 되어 버린 시인의 손끝에서 하나의 감각은 솟구쳐 올라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 세상의 문
  • 박현태 저 | 토담미디어
  • 박현태 시인은 1972년 <미완의 서정>을 시작으로 이번에 열여섯 번째의 시집을 상재했다. 이 정도면 문단에 들어온 이후 꾸준한 작품활동을 해 온셈이다. 시인으로서 성실함이란 참으로 귀한 덕목이다. 그러나 이를 뛰어넘어 문학경력 후반으로 올수록 더욱 왕성해지는 시인의 시심은 놀라울만큼 눈부시다. 생물학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적지 않은 나이를 가지고 있지만 꾸준히 걸어가고 있는,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는듯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 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가만,/ 방금 스쳐 간 저 분/ 분명 어디서 봤는데(「그러네」 일부)' 기억 나지 않아서 '오늘은 독하게 취해보려'고 작정하는 시인의 용감무쌍을 응원한다.
  • 소금 울음
  • 정일근 저 | 실천문학사
  • 『소금 울음』은 삼십 년 동안 시를 써온 조재도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겹쳐 놓은 자리에서 이 세계를 지배하는 욕망과 권력의 언어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 자신의 언어, 자신에 의해 이미 회복된 언어의 장소를 다시 떠나는 도전을 감행한다.
  • 소금성자
  • 조재도 저 | 산지니
  • 걸러내서 꼭 필요한 것만 남긴 하얀 소금 같은 시집. 정일근 시인이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후 등단 30주년을 기념하여 출판되었다. 따라서 시인이 갖고 있는 시에 대한 생각과 철학이 보다 압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이 시집은 시인이 인세 전액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네팔 지진 구호성금으로 내놓아 ‘착한 시집’으로도 의미를 가진다. 『소금 성자』는 30년 전, 정일근 시인이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를 다시 띄워주는 한 통의 편지 같다. 그 편지에는 기다림과 그리움의 언어들이 가득하다. 더불어 삶과 죽음을 껴안는 따뜻한 서정도 흐르고 있다. 희망도 명료하다. 시집에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누구나 그의 시가 여전히 따뜻함을 잃지 않고 있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시단의 서정과 그 궤적을 같이 하고 있는 정일근 시인의 성숙된 시적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집이다.
  • 수요일의 텍스트
  • 정원숙 저 | (주)천년의시작
  • 2004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한 정원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 시작시인선 206번으로 발간된다. 정원숙의 이번 시집 『수요일의 텍스트』에는 유난히 산문 형식의 작품이 많다. 이외에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와는 다른 지점이 여럿 보인다. 지속적인 문장의 반복과, 비유와 상징이 아닌 진술을 통해 시를 만들어가는 부분이 그렇다. 그의 시를 문장 단위로 살펴보면, 문장 속에서 ‘시적’인 부분을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문장과 문장이 겹쳐지면서 시적 특성을 가진 직조물을 완성한다. 시집의 제목에 붙은 ‘텍스트’란 말 그대로, 문장 단위에서 시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 아닌, 문장과 문장의 간극과 접촉을 통해 평범한 진술을 엮어 시적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시의 작법은 기존 시의 전통에 대한 도전이다. 전통적 작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작법을 이용해 시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수요일의 텍스트』는 이런 도전을 통해 확실한 시를 만들어내고 보여주는, 훌륭한 시집이라 말할 수 있다.
  • 숙맥노트
  • 유안진 저 | 서정시학
  • 유안진 시인은 백년 한국시사의 절반을 모국어의 경작에 정혼을 바쳐 독창적 시세계를 구현한 오늘의 시단의 중추이며 원로이다. 1966년 박목월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하면서부터 촉망을 받기 시작했고 시집 『달하』 『절망시편』 등을 잇달아 펴내면서 그의 문채文彩는 날로 새로운 빛깔로 시대를 물들이는 바 되었었다. 이미 있어온 시에 대해서는 단연코 멀리하며 새 시집을 상재할 때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이들의 눈을 괄목刮目케 하더니 이제 반세기 시법의 절정에서 결산하는 이 사화집에서 또 한 번의 환골탈태를 보여주고 있다.
  • 숲 거울
  • 차옥혜 저 | 푸른사상사
  • 차옥혜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 숲을 거울로 삼은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주며 생명과 사랑, 평화를 노래한 맑고 아름다운 시편들이 실려 있다. 『숲 거울』을 통해 시인은 숲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숲과 인간의 공동체적인 운명을 자각시키고 인간이 궁극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이상 세계를 지향한다. “숲”은 “생명과 생명이 사랑으로 껴안는 곳”이고, “맑고 깨끗한 하늘과 땅이 눈 뜨는 곳”이다. “사람이 꽃이고 꽃이 사람인 곳”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세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화자의 희망이다. 시인이 제시한 ‘숲 거울’의 의미는 크고도 깊다. 숲이 어머니와 스승과 친구 등과 같고, 이 세계를 환하게 비추어주는 존재로 인식함으로써 숲과 인간이 공동체라는 운명을 자각시킨다. 또한 숲과 인간이 지닌 생명력, 사랑, 평화, 우주적 질서 등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시인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숲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숲을 거울로 삼고 인간이 궁극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이상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 시가 나를 만든다
  • 서주석 저 | 문학아카데미
  • 융의 이론을 원용하고 곽암의 『심우도』에 기대어 시와 선과 심리치료를 통합해보려고 하는 서주석의 야심찬 시도는 우리를 겁박하고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의 하위 무의식의 나락으로 용감하게 들어가 본다든가, 밝은 감성으로 이분법적 경계를 해체하며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된다. 시의 예술성과 내면 탐구의 치열함이 행복한 조우를 이룬 시편들과 더불어 이 시집의 시편들은 앞으로 ‘탈동일화’를 통해서 벗어날 수 있는 자기(the Self)의 확장과 이미 우리 안에 있던 더 높은 차원의 느낌, 즉 이웃사랑, 천재적인, 뛰어난 집중력, 조명 엑스타시와 같은 정신적 기능과 영적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는 영성의 확장을 전망하게 한다. 영혼의 깊은 곳까지 탐색해 들어가는 시인의 작업을 치하하고, 기대를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고명수(시인, 동원대 교수)"
  • 신부 수첩
  • 조혜은 저 | 중앙일보플러스주식회사
  • 문예중앙시선 44번째 시집은 조혜은 시인의 『신부 수첩』이다. 조혜은 시인은 2008년 《현대시》에 「89페이지」 외 두 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와서 보호자 없는 아기, 늙고 병든 할머니, 매 맞는 아내, 소통하기 힘든 장애우 등 노약자를 위한 시와 80년대 생들의 세대적 체험을 다룬 시들을 발표해왔다. 이번 시집은 2012년에 나온 첫 시집 『구두코』에 이은 두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사랑의 폭력성’을 테마로 하여 불행을 응시하는 눈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이 사랑을 모독하고 질식시키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장면의 배우이자 관객인 시인의 조각난 내면의 음악들은 전곡 반복으로 설정된 플레이어에 걸려 재생되듯 독자의 귀를 떠나지 않는다. ‘텅잉(tonguing)’은 악기를 불 때 혀끝으로 소리를 끊는 관악기 연주 기법으로, ‘tongu’와 ‘-ing'가 결합된 말이다. 혀의 움직임, 혀 놀림은 연주인에게는 연주 기법일 것이고 시인에게는 시를 쓰는 행위일 것이다. “실패를 따라 완성된 사람의 숨소리”로 쓰인 이 시집을 읽은 독자는 ‘텅잉’이라는 슬프고도 세련된 의성어를 오래도록 간직하게 될 것이다.
  • 신화마을
  • 한영채 저 | 시와소금
  • 2015년 울산문학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한 작가의 두번째 시집으로 치유와 승화를 위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 시간 속에 있는 만물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다. 지구별에서 시간은 모든 생명체를 티끌처럼 흩어버린다. 숭의여대 전기철 교수는 시집해설을 통해 "시인에게 은유는 끌어안음이며 뛰어넘음이다. 전체가 은유로 되어 있는 것도 있기도 하고 시 한 편 속에 은유를 넣어 상처를 끌어안기도 한다. 그것이 은유의 힘이다." 라고 평가하고 있다.
  • 아무르 호랑이를 찾아서
  • 성배순 저 | 시로여는세상
  • 성배순 시 만이 가진 독특한 이야기 형식을 갖춘 시집이다. 신화적 발상과 전설, 설화, 민담 등의 구전 이야기의 차용이 매우 주목되는데, 이는 세계와의 불화를 받아들이는 시인의 시적 태도가 물질적 상상력을 토대로 배태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여성의 문제는 모성의 문제와, 모성의 문제는 동심의 문제와, 동심의 문제는 순수의 문제와 상호 뒤얽힘으로 표현했다. 시인은 여전히 자연이 제공하는 풍부한 사유와 상상을 누리고 있다. 화분의 풀 한 포기, 들판의 꽃 한 송이에서도 시인은 삶의 진면목을 이끌어낸다. 자연에 대한 살아있는 감각은 원초적인 자연의 힘을 재현할 때 유달리 역동적이다.
  •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
  • 김왕노 저 | (주)천년의시작
  • 제 7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하고, 현재까지 6권의 시집을 낸 시인 김왕노의 신작이 시작시인선 204번으로 발간되었다. 이번 시집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에서 김왕노는 기존 시집의 리듬에서 더 나아가, 강렬하면서도 섬세함을 갖춘 호흡의 서술을 그의 주된 테마인 ‘아버지’, ‘북벌’, ‘바다’, ‘여인’에 접속시켜, 이전보다 한 단계 발전한 역량을 펼치고 있다. 다소 마초로 보일 수 있는, 강렬하게 남성적인 그의 시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어린 아이의 연약하고 섬세한, 여성과 모성성에 대한 동경이 보인다. 바다의 광활함과 파도의 격렬함에 대한 동경이 보이는 시 속에서, 깊은 바다 속의 생명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어머니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함께 드러나고, 이러한 그리움이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주제적인, 내용적인 측면이 김왕노 특유의 힘있는 서술과 호흡이 일체화되어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라는 시집을 만들어낸다. 시가 단순한 의미의 함축 또는 비유의 뭉치가 아닌, 하나의 운동이자 행동이라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좋은 시집이라 할 수 있겠다.
  •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
  • 이병일 저 | (주)창비
  • 기발하고 독창적인 발상과 활력이 넘치는 생명 감각이 돌올한 개성적인 시세계를 펼쳐온 이병일 시인의 신작 시집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이 출간되었다. 창비시선 399번째,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다. 자연 속에서 생명의 촉수를 발견하는 심미적이고 감각적인 상상력의 세계로 주목받은 첫 시집 『옆구리의 발견』(창비 2012)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신화적인 명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과거를 발굴하는 신화적 상상력”과 “설화나 전통성이 현대적 정서와 결합된 시인만의 독특한 자연관”(박형준, 추천사)이 도드라지는 존재론적 사유의 세계를 펼친다.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예민한 시선과 사물의 특성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정밀한 묘사, 섬세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세련된 시편들이 감동의 크기만큼 눈부시다.
  • 앵통하다 봄
  • 임성구 저 | 문학의전당
  • 1994년 『현대시조』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임성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안주하지 않는 끝없는 자기부정의 갱신을 시도하는 자세는 뛰어난 예술가의 덕목이다. 첫 시집 『오랜 시간 골목에 서 있었다』에서 ‘사물과 삶과 시의 구체’(유성호 문학평론가), 두 번째 시집 『살구나무죽비』에서 ‘원융과 상생의 시학’(이연승 문학평론가)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 이르러 확연히 달라진 시세계를 선보인다. 강한 자학과 자기 부정의 험난한 과정을 거쳐 자존의 엄중함을 지득해가는 시편들의 생살을 찢고 튀어오르는 듯한 시어들은 자못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자신을 겨냥한 날 선 언어들은 이전 세계 대한 회의를 통해 내면에 잠들어 있는 영혼을 일깨우고자 한다. 하여 이 철저한 자기부정이 도달하는 곳은 도리어 활성(活性) 에너지로 충만한 세계, 세상을 향해 열린 영혼의 자리다. 우리는 문득 거친 언어로 자탄했던 시들이 어느새 우리를 따뜻이 감싸며 자구(自救)로 이끌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어떻게 나를 사랑할 것인가.’ 『앵통하다 봄』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아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야만의 사육제
  • 김명서 저 | 한국문연
  • 나는, 다음 몇 가지 사안에 의미를 두고 살아야 한다. / 이 시집이 어렵사리 태어났다는 것. 이 시집이 어렵사리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시와 삶의 안팎에서 안일이라는 테두리에 갇히지 말 것. / 그리고 또 하나 하루하루에 감사할 것…이 그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나간 날에도 다음 페이지의 이 순간까지도. / 2016년 5월 김명서
  • 어느 경주씨의 낯선 귀가
  • 최성철 저 | 도서출판 울력
  • 1975년 시문학 지를 통해 등단한 최성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최성철 시인은 한마디로 都市詩를 쓰는 시인이다. 도시인들의 삶의 모습과 그 내면세계를 보다 깊고 세밀하게 관찰하여 구석구석 만져보는 시 작품들이 시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인의 시적 경향은,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대중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독감 때문에 고민하는 현대인들의 사회적 성격을 탐구했듯이, 시를 통해 자신이 만든 문명 속에 갇혀 버린 도시인들을 탐구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오랜 세월 동안 시인이 추구해 온 도시인들의 심리적 내면풍경의 이미지가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고, 특히 어떤 논리성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다양한 이미지의 충돌과 결합을 통해 복합적인 시적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한편, 언어의 쓰임에서는 모더니즘의 지적 언어가 형성하는 언어의 구조가 시편마다 번득이고 있으며, 비, 바람, 구름 등의 자연물들이 인공적인 것과 대립되는 시적 은유의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 언어들은 도시 문명 속에서 점점 상실되어 가는 인간성의 회복을 암시하는 생명적인 이미지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 서윤후 저 | (주)민음사
  • 2009년, 스무 살의 나이로 데뷔한 서윤후 시인이 등단 후 8년 만에 첫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출간했다. 시인이 시집의 주된 화자로 호출하는 ‘소년’은 가족 구성원 중 가장 깨끗한 백지상태에서 시작하여, ‘소년성’이 더렵혀지는 과정을 최후까지 남아 비교적 소상히 업데이트할 수 있는 ‘동생’으로서 위치한다. 동생은 아마도 1990년대생일 것이고, 그렇다면 이제 소년을 벗어나 청년이 되어야 할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서윤후의 동생은 소년과 등치되어 성장을 지연시키고 서로의 성격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소년의 소심함과 동생의 다정함이 뒤섞여, 내밀하고 친밀하며 예민하고 예리한 시적 화자가 탄생했다. 엎드려 울고 있는 듯 몸을 숙인 동생 혹은 소년.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이자 ‘서윤후의 소년’이 등장한 것이다.
  • 얼음 동백
  • 이승은 저 | 책만드는집
  • 이승은 시인이 단시조만을 묶어 낸 아홉 번째 시집. 시인은 그동안 짧고 간명한 시조 중에서도 단시조에 가깝게 압축미를 위해 전력을 다해왔는데, “일곱 해를 품어왔던 단시조”로 엮은 이번 시집은 시인이 긴 시간 동안 만만치 않은 공력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이승은의 단시조는 늘 새로운 이면을 제시하며 우리의 곁으로 다가온다. 그의 시는 먼 곳에서 오지 않는다. 늘 그가 움직이는 주변과 생각의 지근거리에서 온다. 그의 작품들이 커다란 사회 이슈나 시류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깊이를 유지한다는 것은 나름 숙성의 과정을 거치며 농익는 시간을 두고 충분하게 갈무리한다는 뜻이다. 선집이 아닌, 일곱 해 동안 쓴 단시조를 따로 모아 펴낸 이번 시집은 다양하고도 정직한 보폭을 지켜온 한 시인이 한결 더 무쌍해졌음을 실감하게 한다. 열정의 극세사로 탄력이 강한 홀쳐내기 공력을 펼치며 무반주로 이루어내는 아카펠라의 숙연한 모습처럼 단시조의 대합창을 펼친 시인의 노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 엄마라는 공장 여자라는 감옥
  • 박후기 저 | 가쎄(gasse)
  • "우리 모두의 엄마, 모든 엄마라는 여자,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혹은 살아지고 사라지는 그 모든 여자들에게 시집을 바칩니다." 시인 박후기가 세상 모든 엄마와 여자들에게 드리는 선물. 지금 당장, 당신은 엄마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돈을 많이 버는 것, 아니 그 이전에 취업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취업을 했다 해도 엄마에게서 받은 사랑을 돌려 드리기엔 너무나도 까마득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아마도 결혼을 했다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면 엄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더욱더 줄어들 것이다. 물론, 엄마가 당신에게 베풀었던 사랑을 자식에게 돌려주고 있겠지만, 어차피 내리사랑이니까. 엄마는 자식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너무 형식적이다. 사실, 엄마는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다. 겉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자식과 밥도 먹고 싶고 여행도 같이 가며 그런 일들을 밖에 나가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가끔 자식들을 귀찮게 할 때도 있지만, 자식들이 받은 사랑에 비하면 그렇게 무리한 요구도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은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에 대한 엄마 스스로의 자각일 것이다. 가끔은 들키고 싶기도 한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은 가족에 대한 희생과 헌신이라는 ‘엄마의 자격’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수그러들기 일쑤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 참고 견디는 우리네 엄마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통해 생활 속에서 겨우 숨 쉬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여러 권의 시집과 기타 저작을 통해 필력을 인정받은 박후기 시인이 ‘엄마라는 여자’를 주제로 짧지만 울림이 있는 70편의 시를 썼고,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냈다. 오로지 이 땅의 절반인 여자, 그러나 이 땅 남녀 모두의 어머니인 여자의 삶에 주목하면서 쓴 시들은 엄마의 사랑처럼 우리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 연애 間
  • 이하석 저 | 문학과지성사
  • 이하석은 1971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이래 40여 년 동안 서정시로 분류할 수 있는 시편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특히 지난 2011년 ‘서정시로 시의 정도(正道)’를 걷겠다는 뜻을 가진 ‘극(極)서정시’ 시리즈로 시집 『상응』을 출간한 바 있다. 『상응』은 시의 서정성을 되찾고, 내용이든 형식이든 독자에게 좀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는 그의 다짐과도 같았다. 이번 시집은 『상응』 이후 이하석이 내놓은 첫번째 신작이다. 4년여의 시간이 흐른 만큼, 그가 그리는 세계, 그리고 묘사, 표현은 더욱 깊어졌다. 이번 시집은 ‘기억’이라는 단어에서부터 풀어낸 명시들이 주를 이룬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하석에 대해 “서정 시인으로서는 희귀하게 자기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평한 바 있는데, 감정이 과도하게 표출되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무언가를 응시하는 관찰자로서의 ‘시선’이 이하석의 시가 가지는 중요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지나간 기억을 두고, 뜯어보고 지워보고 되살려보는 그의 작업물들은 관찰자로서의 이하석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오십 미터
  • 허연 저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한 시인 허연의 네번째 시집 『오십 미터』이다. 이번 시집에는 2013년 현대문학상 수상작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외 6편과, 시작작품상 수상작 「장마의 나날」 등이 수록되어 있다. 허연은, 이번 시집 『오십 미터』로 세월 속에 찌든 슬픔, 마모되어 소멸해가는 존재들에 시선을 보내며 일상 속에 안주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날선 타자로 견뎌나가는 시인의 사투, 그만의 업(業)을 완성하려는 치열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나쁜 소년 같고, 상처 받은 나비 같은 시인 허연. 시인으로 살아온 25년의 세월 동안 예민한 감각으로 도시의 쓸쓸한 풍경을 포착하고 거침없이 고통을 가로지르며 삶의 노예가 되지 않고자 몸부림 친 절실함의 기록이 이번 시집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 온갖 것들의 낮
  • 유계영 저 | (주)민음사
  • 젊은 시인과 마주한 당신의 얼굴에서부터 우리의 낮과 낯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정의’가 성립된다. 2010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데뷔하여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 왔던 유계영 시인의 첫 시집 『온갖 것들의 낮』이 출간됐다. 시인은 무엇으로도 가리지 않고 타자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세계를 향해 순진한 얼굴을 거두어들인다. 그리고 생각을 전파한다. “다 할 수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좋다”라고 말하는 자기 긍정의 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의문과 불신에서 비롯된다. 의문과 불신에 대처하는 시인의 언어는 되레 당당하다. 유계영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세계의 “나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정의를 내리려”는 태도로 시를 쓴다. 이제 유계영이 만든 모든 것의 낮과 온갖 것의 낯을 바라볼 시간이다.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놀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 운동장 편지
  • 복효근 저 | (주)창비교육
  • 『운동장 편지』는 청소년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처럼 쓴 시 60편을 모은 청소년 시집이다. 친구가 건네준 붕어빵의 온기,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두근거리며 설레는 마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달라지는 내 몸, 꼭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 밉기도 좋기도 한 선생님, 가끔은 버거운 부모님의 사랑 등을 소재로 한 시들은 청소년들의 일상에서 출발해 그들의 속말에 다가선다. 『운동장 편지』에서는 시인의 따뜻한 눈길이 머문 열여섯, 열여덟의 빛나는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 유리 자화상
  • 한이나 저 | 도서출판 달샘
  • (신경림 시인) 시 한편 한편이 단아하고 흐트러지지 않은 완성도 높은 시다. 서로 충돌하고 뒤섞이며 만들어가는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 시인이 즐겨 쓰는 시의 방법은 아주 효과적이어서 우리 시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새로운 지평이다. 시집 속의 시 편편이 단아하고 어느 한군데 흐트러지지 않은 점은 그가 얼마나 완성도 높은 시를 지향하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신진숙 평론가) 한이나 시인의 정제된 언어들 속에는 깊은 번뇌의 순간들이 무수한 주름으로 접혀 들어 있다. 마음을 토설하지 않는 서정의 정갈함이, 자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고통을 타고 넘는 그녀의 마음기법이, 오늘날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지 않을는지.
  •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
  • 유지소 저 |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유지소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 유지소 시인은 1962년 경북 상주 출생이며, 2002년 <시작>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제4번 방>이 있으며, 2012년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는 일단 유쾌하다. 첫 시부터 마지막 시까지 정말이지 한자리에 앉아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시집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유지소 시인 특유의 활달한 어법과, 행간을 순식간에 훌쩍 도약하는 상상력, 그리고 문장과 구절과 단어의 반복과 그 반복이 점차 굴절되고 확장되면서 이루어내는 도저한 리듬감에 힘입은 바 크다. 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지소 시인의 이번 시집을 단지 스타일이나 형식상의 차원에서 주목하고 말 일은 아니다. 자, 한번 보라!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작아지려고 자꾸 발끝을 벼랑 위에 세우는” 유지소 시인의 저 숭고하기까지 한 결행을! 자기 자신을 “드디어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까지 밀어붙이는 유지소 시인은 이미 죽음을 생짜로 경험한 자라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요컨대 유지소 시인의 상쾌하고 발랄한 시작법은 죽음까지도 딛고 일어선 자의 그것이다.
  • 일요일과 나쁜 날씨
  • 장석주 저 | (주)민음사
  • 장석주 시인은 ‘자두나무’, ‘일요일’, ‘야만인’ 등의 시어를 시집의 지배적 단어로 배치하면서 그것에 오래 숙련된 감각을 부여한다. 그것은 슬픔과 평온의 혼재된 채로 난간에 기대어 있다. “슬픔의 저지대”에서 “먼 곳의 빈 방”까지, 장석주의 지적인 감각과 시적인 사유는 난간 아래의 슬픔을 건져 올려 독자에게 선사한다. 그것은 신파적 회피나 난감한 요설이 아닌, 정제되고 단련된 장르, 시인이 40년을 써 온 단 하나의 예술, 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요일의 나쁜 날씨”는 우리를 난감하게 하지만, 난감함을 관통하여 우리가 도달한 난간 아래에 슬픔에 빠진 타인이 보인다면, 그것만으로 우리는 견딜 수 있으리라 장석주는 말하고 있다.
  • 일요일은 일주일을
  • 김남규 저 | 고요아침
  • “만 25세에 시조단에 등단한 ‘젊은’ 시조 시인”, “정형시에 대한 문제 제기와 새로운 시각”,“시인 스스로 자신의 시집을 편집ㆍ발간” 만 25세에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으로 당선한 김남규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일요일은 일주일을>이 출간되었다. 시조문단에서 비교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조집은 기존의 오래된 서정과 형식에서 벗어나 ‘정형시’에 대한 시인의 새로운 시도와 시각들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특이하게도, 계간 <열린시학>, <시조시학>의 편집장으로 있는 김남규 시인은 자신의 시집을 자신이 직접 편집, 발간하였다.
  • 자[尺]
  • 조영숙 저 | 도서출판 시와시학
  •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자[尺]>는 인간의 성선설에 기초를 두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시인의 여정이 담긴 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시인은 잃어버린 시간의 바늘을 현재적 삶의 공간으로 재설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인생의 고유한 원리를 측정하는 하나의 균일한 ‘자’가 되어 현재 삶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시인은 유년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시인 특유의 정갈한 서정 시편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집 속에서 ‘청풍 할매’나 ‘천딕이’처럼 유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만난 주변의 평범한 인물들이 사랑과 공경과 연민과 동정의 정서를 동반하며 등장하고 있다. 이렇듯 이야기체 술어를 사용하여 마치 마주앉아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해주듯 과거 유년시절에 넘치던 인정(인심)을 보여주며 인간 삶의 보편적 진실을 일관되게 전해주는 시집이다.
  •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 강경호 저 | 시와사람
  •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으로, 전통서정의 표현방식을 근저로 해서 자아확인의 치열한 정신을 덧붙이고 거기에 시인을 둘러싼 세상을 향해 비판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 시집은 철저히 시인 자신의 생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근본적으로 대상과 맞서기보다는 대상 속으로 스며듦으로써 그 대상을 자신의 내면적 정서를 투영하는 매개물로 삼는 경우가 다수이다. 2000년대 중반 미래파 소동이후 서정시는 마치 도산한 회사의 부도처리제품 같은 편견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다시금 견고하게 복권되면서 문학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 이런 서정시의 최전선에 강경호가 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진규 시인은 “우리는 그의 절제의 미학이 형식과 표현에 머물지 않고 고요와 냉정에 이른, 그래서 관능과 사유를 조절하는 균제미의 성취에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 저 환한 어둠
  • 서하 저 | 도서출판 달샘
  • 서하 시인의 시는 이미지와 위트가 빚어내는 시적효과가 참으로 남다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관계 지어진 이들로 인해 아프도록 슬픈 그녀의 통통 튀는 언어의 유희, 자신을 기만하지 않고 진솔하게 펼치는 언술을 따라가다 보면 어두운 것도 어느 새 경계를 넘고 그냥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시어의 보고로 끌어 들인다. 어둠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서 이게 어둠의 전모예요 라고 말하는 도화사 노릇이 눈물겹다. 살면서 부딪히는 갖가지 어둠을, 가볍게 털어버리는 언어의 유희가 그녀 시의 장점이요, 특징이다. 삶의 곡진한 기미를 볼록거울로 들여다보는 서시인의 시정신이 이처럼 웅숭깊다는 사실이 놀랍다. 언어의 연금술사이면서 신의 위임을 받은 자, 서하 시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서시인의 시집⌜저 환한 어둠⌟을 제33회 대구문학상 수상자로 정하는 데 심사위원 전원 합의하였다. 서하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이룩한 성과는 박수 받아 마땅할 것이다.
  • 저기 한 사람
  • 박세현 저 | 문학의전당
  • 1983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한 이래 30여 년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온 박세현 시인의 신작 시집. 박세현의 이번 시집은 의미와 해석으로부터 끊임없이 탈각하려는 결별의 사인(sign)들로 가득하다. 시가 의미 밖으로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는 ‘인식’의 포로일 때, 시는 더 이상 시적인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여 시인은 자기 규율과 통제를 강요하는 이성과 규칙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전율과 출렁거림이 요동치는 감성의 시간에 스스로를 내맡김으로써 형상화의 관념을 기대하는 독자를 실패하게 만든다. 이 의도된 실패에는 이성의 누수(漏水)를 통해 세계의 자유와 교감하려는 시적 전략이 내장되어 있다. 시인은 언어와 생각과 몸이 일치되는 하나의 ‘선율’로 자신의 시를 노래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번 시집을 통해 시인은 익숙한 문법에 기대어 의미와 해석의 포로가 되지 않는, 온전한 자기 현시(顯示)로서의 시를 꿈꾼다.
  • 저기, 분홍
  • 이미산 저 | 현대시학
  • 2006년 「현대시」로 등단한 이미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이미산에게 시의 언어는 생의 구체성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존재의 창이다. 말을 덜어내는 쪽으로 향하는 시작(詩作)과 달리 그녀의 시는 말을 잇고 더해가는 방식 속에서 생성되고 존재한다. 이는 그녀의 시가 성찰과 발견의 형식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부리고 발현하는 자리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한 점에서 시는 그녀가 욕망을 사는 장소이고 시의 언어는 그 욕망이 자신을 드러내는 계기이며, 그녀의 시가 빚어내는 말의 맛, 말의 성찬은 그 욕망이 자신을 현현하는 육체인 셈이다.
  • 저녁의 내부
  • 이서린 저 | 서정시학
  • 가만가만 이 세계의 내부를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에는 生의 슬픔이 가로놓여 있다. “햇빛에 눈물이 난다”(「기침」). 당신은 햇빛에 어찌 눈물을 받아두었는가. 햇빛 속에서 녹슨 사물들을 바라보는 저 처연한 말들에는 憂愁와 울음이 미만하다. 습기를 내장한 이 고요 속에 한 세월을 지나온, “매운 향기 글썽이는 섬”(「파꽃」)의 내면이 풍경으로 그려져 있다. “봄은 늘 喪中이었”(「늘」)다는 풍경의 의식 앞에서, “당신도 울고 싶지?”(「Shadow」) 않느냐고 말을 건네는 이 흑백의 영혼 앞에서, 나의 內部는 적이 적막해진다. 당신이 들었다는 “나무 우는 소리”(「鳴」)를, 당신이 보았다는 그 저녁의 흉터를, 물빛 창창한 당신의 눈길을 지나던 그때, 그래 들었던 것도 보았던 것도 같다.
  • 적빈의 방학
  • 김종호 저 | 서정시학
  • 김종호 시인의 시를 읽으면 한 폭의 水墨山水를 보는 듯하다. 그만큼 그의 시적 정서는 모나지 않은 채 나지막한 어조로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의 탁류 속에서 김종호 시인은 오직 ‘시인’이라는 운명 앞에서 홀로 오롯하다. 그가 바라보는 寂寞江山은 현대인이 귀의해야 할 참 자연이며 시인이 도달해야 할 시적 이상향이다. 옥수수꽃을 보면서 나바호 인디언의 북소리와 그의 만삭의 여인을 떠올리고 三足烏의 까마아득한 신화에 귀 기울이는 無比의 상상력이 정녕 값지다.
  • 정자낭구 안둥네 사람덜
  • 김충자 저 | 도서출판 지혜
  • 김충자 시인은 1945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고, 2003년 {해동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명천 뻐꾸기}가 있으며, 현재 ‘서산여성문학 서안시 회원’ 및 충남 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자낭구 안둥네 사람덜}들은 79편으로 된 연작시집이며, 그의 고향마을인 『정자낭구 안둥네 사람덜』의 이야기로 구성된 서사시집이라고 할 수가 있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 형부, 친구, 이웃집 사람들의 삶의 문양이 고스란히 드러난 서사시집인 동시에, 충청도 사투리의 승리이자 그 향연장이라고 할 수가 있다. 풍요롭지만 마음이 공허한 현재와 가난했었지만 인정이 있었던 과거를 상호 유비시키면서 추억으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시인, 추억을 현전의 언어로 위무하는 시인. 충청도 방언이 눈앞에 쟁쟁하게 들려오면서, 그 옛날의 서사적인 드라마가 한 편의 흑백영화로 펼쳐지게 된다.
  • 제비꽃 꽃잎 속
  • 김명리 저 | 서정시학
  • 김명리의 새 시집 『제비꽃 꽃잎 속』은 ‘촉촉한 살청’으로 물과 바람과 시절과 우리의 “숨구멍을 가만히 옥죄었다 놓는” 15여 년의 ‘어린문’으로 울울합니다. ‘물그림자’로 불러도 좋을 그것이 있어 “젖은 책을 열 때면 입 속에 물이” 가득 괴고 “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아도 목마르지 않”(「젖은 책」)은 현재의 충만이 피어난달까요? 가령 시인은 “어스름이 물의 숙박부에 무루無漏라고 제 이름 적”(「물그림자」)는다고 썼는데요, ‘무루’란 불법佛法에서 ‘어둡지 않고 밝으며 다함이 없음’을 뜻하는 말이라지요.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상응과 통합의 지경을 대번에 상기시키는 표현일 듯합니다. 김명리 시인의 시에는 시간이 쌓여 있다. 시간이라는 물줄기의 발원지가 있고, 시간이라는 연못이 있고, 시간이라는 시내가 흐른다. 그리하여 이 시집에는 저 아득하게 먼 곳에서 시간이라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그 물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적막과 슬픔이 느껴진다. 그러나 물소리의 보다 안쪽에는 감미로운 음악이 있다. 매우 서정적이고 예민하고 아주 부드럽게 속삭이는 이 시편들은 우리들에게 사랑의 악보를 완성해 펼쳐 보인다.
  • 주술사
  • 황봉학 저 | 현대시학
  • 2011년 「애지」로 등단한 황봉학 시인의 시집. 황봉학의 시는 시라는 서정적 장르에 스토리텔링이라는 이야기구조를 덧입혀 그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놓고 있다. 흔히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면, 스토리story와 텔링telling의 만남 즉 ‘이야기하다’를 지칭하는 것으로, 타인에게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황봉학 시인의 시적 특징이 바로 이러한 ‘이야기하기’에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의 시는 대다수 ‘스토리’를 지닌 ‘말하기’ 방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스토리텔링의 재기才氣를 시 장르에 활용하고 있다. 그에게 시는 “뼈(늑골)”이자 “살”이며, “피”다. “늑골 하나, 살 한 점, 피 한 방울”이 온전히 문장 안에 든 것이야말로 그에게는 ‘시’란 것이다. 그의 “책”(시집)은 울부짖는 “귀신”의 “영혼”으로 함축되며, 그것은 시에 전 생애를 걸어 귀신의 결지決志에 든 자의 영혼과도 같다. 「시인의 말」 조차 스토리로 말하고자 하는 그의 시적방식이 잘 드러난 글일 터이다.
  • 즐거운 무언극
  • 허열 저 | 푸른사상사
  • 허열 시인의 신작 시집. 어린 시절에 겪은 6·25전쟁의 기억에서부터 노년에 이르러 자연스레 생겨나는 죽음의 의미까지, 어찌 보면 반세기가 넘는 인생을 관통하는 사건들이 그의 시적 소재가 되었다. “문학은 인생의 총화”라는 말이 있다.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다양하다면, 시인이 그만큼의 연륜을 지니고 많은 체험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오랜 기간 축적해온 자신의 인생관과 문학관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 소재는 전쟁, 노화, 죽음, 현실, 종교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그리고 그런 소재를 긴 인생 체험에서 오는 노련함으로 소화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연륜은 단지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원숙함과 벗한다.
  • 지중해의 피
  • 강기원 저 | (주)민음사
  • 이미지로 응결된 백적흑청의 시, 시인의 붉은 피와 지중해의 푸른 피가 만나는 미적 체험의 순간들 - 1997년 《작가세계》로 등단하여 제26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활발한 시작 활동을 보여 준 강기원 시인의 네 번재 시집 『지중해의 피』가 출간되었다. 시인은 적색과 청색이 혼재되는 시집 제목처럼 각각의 색이 살아 있되, 서로 길항하고 간섭하여 하나의 시적 세계를 구성하고자 한다. 피의 색(붉은색)이 지닌 죽음에 대한 욕망과 뜨거움, 바다의 색(파란색)이 지닌 생명에 대한 진취와 호방함이 흑색과 백색의 배경과 어우러져 강기원 특유의 미적 세계관을 이룬다.
  • 천사들의 나라
  • 전윤호 저 |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전윤호 시인의 다섯 번째 신작 시집. 전윤호 시인은 1964년 강원도 정선에서 출생하였으며, 1991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였고,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순수의 시대> <연애소설> <늦은 인사>가 있다. 전윤호 시인의 어법은 담담하다. 그는 함부로 눈물을 보이지도 않으며, 애써 고통을 호소하지도 않고, 쉽사리 분노에 휘둘리지도 않으며, 설익은 한탄에 젖지도 않는다. 다만 정선 장터 뒷골목 어느 허름한 술집에 앉아 메밀전병에다 옥수수막걸리 한 사발을 건네며(「메밀전병」) 읊조리듯 무심히 들려줄 뿐이다. 비록 그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이는 얼마나 거대한 슬픔이고, 더할 수 없는 통증이며, 들끓는 분노이고,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인가. 류근 시인은 <천사들의 나라>를 곁에 두고 “맑은 우울, 맑은 비하, 맑은 실연, 맑은 중독, 맑은 안녕, 맑은 위독, 맑은 분노, 맑은 비루, 맑은 서러움, 맑은 가난, 맑은 후회, 맑은 고통, 마침내 맑은 절망”이라고 길게 윤창하는데, 정말이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고요하고 쓸쓸하고 오롯이 맑은 시집은 근래 없었기 때문이다.
  • 첫 마을에 닿는 길
  • 우미자 저 | 도서출판 황금알
  • 우미자 시인의 시적 변주와 서정의 궤도는 지상과 끝없는 천공까지 광대무변하다. 하지만 여름날 매미가 지상으로 나와 죽음을 직시하며 노래하듯, 그 역시 지상의 시인으로서 천공을 노래한다. 천공 안에는 노니는 대자연의 꽃과 나무, 새와 바람을 그는 경작하면서 “천수관음千手觀音”(「즈믄 손 즈믄 눈」)을 닮은 시안詩眼으로 만다라의 사랑 노래를 부른다. 더러는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노골적으로 집약하지만, 시를 관통하는 ‘지극함’으로써 우리는 그 ‘첫 마을’에 닿을 수 있다. 그는 극진하고 간절한 사랑으로 “푸르른 내 영혼은/ 그대 가슴 속에 깃들어 사네//…간절한 내 사랑은/ 그대 안에 머물러 한 생”(「깃들어 살다」) 깃들기를 염원한다. 화자의 절망적인 비문증飛蚊症은 “내 눈 속엔 사계절 나비와 새가 살아서/ 내 마음속에도/ 바람 속에 새들이 훨훨 날아”(「내 눈 속에 새 몇 마리」) 낙원으로 인도한다. 관음과 낙원사상이 무르익은 시편들은 잃어버린 도원경으로 가는 길이며 바로 ‘첫 마을에 닿는 길’일 것이다. -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간)
  • 초록세상 하늘궁궐
  • 이상범 저 | 고요아침
  • 화상畵想으로 구어 낸 시, 시상詩想 속을 떠 흐르는 고졸경古拙境 - 이상범 시인의 디카시에는 전혀 의외의 상상력으로 새로움을 불러 일으키며 관념을 통렬하게 무너뜨리는 절묘함이 있다. 또한 정태에서 동태로 이동하는 모습이 아주 세밀하게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물의 미세한 이동을 관찰하고 이러한 변화를 카메라에 포착하면서 동시에 이를 작품으로 빚어내고있다. 시인의 디카시에서 가장 주목되는 시적 정신은 순수함과 진정성이다. 순수함은 시적 상상력의 무한한 확장을 가능케 하며 진정성은 치열하게 문학의 본질만을 업으로 살아온 시인의 생애와 일치한다. 요컨대 이상범 시인의 작품세계는 살핀 바와 같이 디카시의 새로운 장르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완성된 작품들은 일련의 이슬방울들의 작업에서 도드라지듯 하이퍼리얼리즘의 전범을 보여주기도 하고 시적 상상력이 통념을 깨고 전혀 다른 개념으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이는 곧 화상으로 구어낸 시, 시상 속을 떠 흐르는 고졸경의 시세계다.
  • 춤으로 쓴 편지 : 현대시세계 시인선 065
  • 김리영 저 | 도서출판 북인
  • 199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김리영 시인이 등단 25주년 기념으로 네 번째 시집 『춤으로 쓴 편지』를 출간하였다. 실제 무대 위에 춤의 미학을 보여주는 무용가이면서, 언어로 감동을 시로 형상화해 보여주는 시인이기도 한 김리영 시인은 지상을 발 딛고 살면서 만나는 갖가지 신선한 체험들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안아 거름으로 치환시키고, 그것을 시로 쓰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시집 『춤으로 쓴 편지』는 시적 영혼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마다 다른 구체적인 삶의 상황 속에서 시인의 시적 영혼은 그들과 다른 삶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김리영 시인의 시의 화자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그것은 영혼의 목마름을 의미한다. 그에게는 “노란 모래 냄새”가 나는 “모래 한 줌”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 속에서 그는 “내 꽃 피우고 싶다”는 갈망을 가지고 있다. 그 ‘꽃’이란 영혼의 아름다움이 현현된 ‘시’를 의미할 것이다. 그는 “흰 색 작은 꽃”을 피우기를 갈망할 뿐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꽃. 허나 그에겐 남다른 욕심이 있는데, 그것은 “한참을 기어가도/ 비스듬히 누워 피고 쓰러지지 않는 꽃”이어야 하는 것이다.
  • 침묵의 여울
  • 이수익 저 | 도서출판 황금알
  • 이수익 시인의 시는 사물의 급소를 찌르는 언어의 선명성과 아름다움에서 단연 빛을 발한다. 이번 12번째 시집에서는 그것과 더불어 성찰적 비애 의식을 보여주는 시편들이 여럿 보인다. ‘욕망’과 ‘좌절’(「그만큼의 높이, 드론」)의 풍경을 통해 삶의 해방구를 성찰하기도 하고, 육탈한 ‘뼈’ 앞에서 ‘울음’(「견고한 뼈」)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비애 의식이 보여주는 시적 아름다움은 ‘불꽃’(「불꽃, 끝없이 타오르는」)의 생명성과 만나면서 엄숙과 외경의 경지에까지 이른다. 인간 삶과 존재의 근원을 선명한 이미지로 꿰뚫는 이 시집의 시편들은 ‘은밀하게 챙겨주고 싶은 조그만 비밀’(「비밀을 보이다」)을 가진 시인의 정신세계가 빚어낸 깊은 울림의 결실이다. - 배한봉(시인)
  • 칼국수 이어폰
  • 박몽구 저 | 시와문화
  • 「나사를 보면」에서 시인은 꼭 조여진 세상에 대한 전복을 꿈꾼다. 나사는 조여야 자기 몫을 하는 것일 텐데, 시인은 조인 것을 풀어버리는 일에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빌리 할리데이’의 흐린 듯한 낡은 재즈 음색을 낡아빠진 라디오 때문이라 여기고, ‘멱살을 풀어주’고‘그녀의 쉬고 지친 목소리’에‘봄볕 한 줌 얹어’주고 싶어한다. 모든 것이 꼭꼭 조여져서 갑갑한 세상을 향해 시간의 부챗살을 활짝 펼치듯, 시인은 작금의 사태를 시와 정치의 형태로 펼쳐 전복을 꿈꾼다. '유아기도 소년기도 거치지 않은 채/ 바로 가슴 불룩한 처녀로 커버린 암탉’의 모습은‘나의 배부른 밤’과 대비되는‘웃자란 이웃들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웰빙꼬꼬」는 반어적 의미를 담고 있다. 오로지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먹이를 먹고 웃자라서, 타자의 몸보신을 위해 희생당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이 시는 그런 존재들로 가득 찬 세상이라면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독자에게 스스로 묻도록 만든다.
  • 타르초, 타르초
  • 김형술 저 | 중앙일보플러스주식회사
  • 199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20여 년간 시작 활동을 해온 김형술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타르초, 타르초』가 출간됐다. 그동안 황막한 도시 문명의 이면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자기성찰의 변신을 거듭해온 김형술 시인의 이번 시집은 2011년 『무기와 악기』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신작 시집으로 「구름 쪽으로」 외 52편을 담고 있다. 이번 시집 『타르초, 타르초』는 표제시(타르초: 티베트 불교의 경전을 인쇄한 깃발)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현실세계 너머의 언어, 언어 바깥의 언어, 혹은 언어를 버린 이후 세계를 갈망하는 시인의 불운한 숙명을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언어라는 존재의 사슬에 스스로 얽매인 채, 주체와 언어 사이에 내재된 어떤 불쾌한 통증을 끊임없이 감각한다. 시인에게 현실의 언어는 “입속 가득/삼켜지지 않는 혀들/삼켰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뱉어버린/물컹물컹한 흉기들”(「반성」)로서 ‘가면의 언어’이며 ‘타락한 언어’이고 ‘지옥의 말’과 다름없다. 따라서 시인이 다다르고자 하는 곳은, 언어 이전의 몸, 혹은 침묵의 세계이다. 그것은 거울 뒤편의 침묵이며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출구이기도 하다.
  • 톈산 산맥 아래에서
  • 최석 저 | (주)천년의시작
  • 시작시인선 198권. 1987년 무크지『현실시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한 최 석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그의 시집 『톈산 산맥 아래에서』는 “톈산의 발치에 앉아” “오랜 밤을 견딘 기억들”(「자서」)을 꾹꾹 눌러 적은 비망록이다. 톈산 산맥은 텐산天山이란 범상치 않은 이름에서 느껴지듯 중국의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와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의 4개국에 걸쳐 있으며 동서의 길이가 2500 Km이며 최고봉이 7435m에 이르는 전설처럼 장엄한 산맥이다. 최석은 “하늘을 탐하는”(「텐산 산맥」) “톈산의 발치”에 위치한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광야가 비어가니 곧 겨울이 올 것”을 예감하며 자신의 실존을 증언하고 있다. 그가 증언하는 카자흐스탄 고려인 디아스포라는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과 스탈린 소수민족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시작된 민족적 체험이 동시적, 연속적으로 전개하여 중앙아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개인사와 민족사에 걸친 삶의 지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 툭, 건드려주었다
  • 이상인 저 | (주)천년의시작
  • 이상인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시공간의 경계인 ‘여기’와 ‘저기’에 대한 관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의 시를 표면적으로 읽으면 윤회설이나 장자의 호접몽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은 차원을 넘어서는 곳에 있다.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흰나비 떼”는 분분하게 쏟아지는 “백설”에 대한 직유이자 현존의 한때를 드러내는 기표이다. 그러나 그 인식은 너무도 찰나적이며 소멸에 기울어 있다. 여기서 현존은 지나가는 한때일 뿐이고, 근원적인 시간은 “저편”에 있는 겹이 다른 장소이다. 이처럼 현존을 일과적인 시간과 장소로 여길 때, 자아는 떠돎을 멈출 수 없으며 밤중에라도 깨어나서 홀로 길을 가거나 택시를 불러 타고 다른 도시로 훌쩍 떠나게 되는 것이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뜀뛰듯 건너갈 수 있는 초월적 비전을 이상인 시인은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공기의 파장을 감지하는 날개를 가슴에 품은 채, 불가해한 도형으로 그려진 날개그물을 펼쳐 겹의 인연을 만나고자 한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 사용된 부사어 “딸깍”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노크이며, “툭”은 그 세계와의 접선의 신호인 것이다.
  • 파의 목소리
  • 최문자 저 | (주)문학동네
  • 최문자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앞선 시집들에서도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듯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 특유의 유연한 목소리와 자유자재로 뻗는 상상력의 자발성과 그럼에도 다소곳한 성품의 차분함이 읽는 내내 어떤 울컥함으로 내 안에 차고 고임을 느끼게 된다. 관록이라 부름직하지만 41년생, 우리 나이로 일흔다섯의 시인이 써나가는 시라 할 때 이토록 엄살 없이 아플 수 있을까, 이토록 긴긴 달굼 없이 뜨거울 수 있을까, 이토록 풍만하고 이토록 군살 없으며 이토록 처음 시를 쓸 때의 그 긴장의 허리뼈를 여전히 곧추세울 수 있을까. 최문자의 시는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놀랍게 읽힌다. 삶과 죽음 사이, 사랑과 이별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 하늘과 땅 사이… 인간이 제아무리 설명한다 해도 실패로 끝나기 십상인 온갖 우주의 섭리를 여타의 다른 비유를 빌리지 않고 온전히 제 살아옴의 경험만으로 빗대 무척이나 솔직한 어조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
  • 푸른숲우체국장
  • 한성희 저 | 현대시학
  • 2009년 「시평」으로 등단한 한성희 시인의 시집. 한성희는 줄곧 자신의 정신적 혹은 정서적 가계의 우선순위에 먼저 아버지를 등장시키길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통해 그 지난했던 존재의 여러 분위기나 기억의 층위들을 하나씩 개봉하듯 피워낸다. 여기엔 웃음보다는 울음으로 활성화된 분위기가 거의 적막에 가깝게 그러나 봄의 정취처럼 화안하게 그리고 푸르게 번져 나오곤 한다. 한성희 시인이 목도하거나 체현했던 울음의 강렬함으로부터 그 울음의 내면화 내지는 울음의 변주나 그 전환적 심성이 종내 그의 시편에서 죽음의 비극성을 낙관주의적 관조의 형태로 전경화 하기에 이르렀다. 그 죽음은 어두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푸른 것이다. ‘푸른숲 공무원으로 아버지는 죽어서도 푸른숲우체국장이 되었다’는 언술에는 앞서, “울음들이/ 새보다 먼저 지상으로 떨어졌”을 때의 죽음에 대한 체념적 심정이 어떻게 실존의 울음을 잘 삭이고 견뎌 오롯한 존재의 심정으로 자연의 순환론적 상상력에 순치되는가를 보여준다.
  • 하늘 우체국
  • 김수복 저 | 서정시학
  • 김수복의 시들은 속 깊은 서정의 일대 도록圖錄이다. 시인은 기억의 가장 먼 끝에 묻어 있는 삶의 흔적과 문양들을 하나하나 순례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origin)은 물론, 숱하게 흘러온 시간을 수습하면서, 그는 신성神聖이 오롯이 깃들여 있는 시원始原의 시공간으로 한 발짝 더 깊이 들어간다. 김수복 시학에서 이러한 시원에 대한 탐색과 추구가 한결같이 구체적 사물과 기억을 매개로 하여 함축적이고 심미적인 언어의 표지標識로 구현되고 있다. 한편 경험의 구체적 매개를 통하여 그만의 고유한 세계를 재구성하여 근대의 이면을 꿰뚫고 비판하는 디오니소스적 혜안이 줄곧 작법의 원리로 발견되는 대안적 세계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시간을 매개로 하는 기억의 시학으로 현실에서의 근원적 사라짐의 속성을 시에서의 탈환 과정으로 완성하면서, 도달하고자 하는 실존적 도정은 융융하고 애잔하고 아스라하게 깊기만 하다.
  • 하멜서신
  • 신덕룡 저 | (주)천년의시작
  • 시작시인선 196권. 200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한 신덕룡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삼 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은 그간의 내면적 정황을 지시하고, 나아가 그의 시세계와 삶의 향방마저도 예고한다. 신덕룡의 시집의 모든 시편은 ‘하멜서신’이라는 명명을 부제로 달고 있다. 개별 시편에 동일한 부제를 나중에 단 경우라기보다 일정 기간을 고스란히 특정한 인물의 정념으로 산 내면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선 땅에 표류하여 청·장년기를 보낸 하멜에 자신을 투사한 60편의 시는 서정시의 핵심 전통인 단일 화자를 한 권의 시집으로 확대한 사례이다. 낯선 조선 땅에서 13년을 보낸 하멜의 서사와 시선 위에 구성된 『하멜서신』은 이방인으로서의 삶, 내동댕이쳐진 생의 폭력성을 하멜의 마스크를 통해 효과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시집에 담긴 생에 대한 정념의 형상은 이역의 땅에서 장년기를 보낸 시인의 개인적 이력과 포개지고, 좀 더 넓게는 생의 보편적 비극성에 대한 수일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 헛디디며 헛짚으며
  • 정양 저 | 모악
  • 정양은 오랫동안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시인이다. 한국작가회의의 젊은 후배작가들이 마련한 ‘아름다운 작가상’의 제1회 수상자이면서 창비가 제정한 ‘백석문학상’의 제7회 수상자이다. 이는 정양이라는 시인이 소리 없는 내공의 소유자라는 걸 증명한다. 정양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에는 정양 시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어떤 구절을 읽을 때는 온몸이 쑤시다가도 어떤 구절을 읽을 때는 싱긋벙긋거리게 된다. 현실과 맞서고 그것을 기록하려는 시인의 눈길은 독자에게 몸살을 앓게 하지만, 그것마저도 결국에는 애정으로 끌어안고 감내하려는 익살스러운 목소리에 마음이 펑 뚫리는 희열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정양 시의 마력이다.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헛디디며 헛짚으며』에는 우리 시단의 왜소함을 훌쩍 넘어서는 고유한 스케일과 열도가 있다""고 상찬한다. 시인 문태준은 『헛디디며 헛짚으며』에 대해 "거참, 시원하다. 이것이 백민(白民)의 노래요, 가락이다."라고 감탄한다. 절망의 시간을 언어의 체로 걸러낸 자리에 희망의 씨앗이 남아 있다는 역설을 우리는 『헛디디며 헛짚으며』를 읽으며 깨닫게 될 것이다.
  • 활을 건다
  • 이민아 저 | 도서출판 신생
  • 이민아 시인의 첫 시조집이다. 시인은 200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2007년 ≪동아일보≫와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된 후. 시와 시조를 함께 쓰고 있다. 시조시인이라 하기에 너무 젊은 시인은 정형의 틀을 ‘간절함’과 ‘각오’의 형식으로 인식하고 그 속에서 언어의 긴장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시조라는 양식에 대한 매력을 쉬이 떨치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활을 건다」라는 표제시조처럼 시인의 시조가 갖고 있는 언어는 정제미와 함께 팽팽한 긴장감 속에 놓여 있다. 시조집의 해설을 맡은 황선열 문학평론가는 이민아의 시조가 ‘상처를 넘어서는 연대의 자리’에 놓여 있다고 짚었다. 이번 시조집에 실린 편편의 작품 속에는 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슬픔이 스민 가족사 등 시인의 상처와 고통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시인은 개인의 이러한 상처에 고립되지 않고 그 상처의 경험을 통하여 타자의 고통까지 감쌀 수 있는 공감의 자리로 나아간다. 낮은 곳, 소외된 사람들, 뭇 생명들의 아픔까지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연대의식을 보여준다.
  • 훈데르트바서의 물방울
  • 이보숙 저 | 도서출판 달샘
  • 세권의 시집 [새들이 사는 세상], [코코넛 게], [목련나무 어린 백로] 를 출간하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세상의 아름다운 면을 부각하고 사람들이 가까이 있는 동물이나 식물 또는 사람에 대한 좋은 모습을 떠올리며 사물의 따스한 면을 발견케 할까 하는 쪽에서 시를 썼던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푸근함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를 집중하며 시를 썼던 게 아니었을까 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시집 [훈데르트 바서의 물방울]을 출간하면서 평론가가 지목하였듯이 여러 가지 음악과 미술 작품을 소재로 시를 만들며 결국 내가 도달하고자 한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며 죽음의 문제며 내가 일찍 떠나보낸 내 혈육에 대한 집착을 풀어내버리고 싶은 욕구가 많이 작용했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함으로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고 또 나의 삶이 나아갈 방향을 굳건히 잡고 싶었을 것이다.
  • 흙의 노래
  • 정대구 저 | 시선사
  • 정공량은 뒷표지 말에서 "정대구의 시는 소박한 우리 일상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그의 상상력은 천의무봉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세밀한 그의 관찰력이 또 다른 세계를 힘차게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적 힘이라는 말은 이런 연유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명쾌하게 짚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남다른 시적 탐색의 자장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어우러진 풋풋한 동경의 세계에 안착하고 있다. 자연의 풍미 속에 우리 삶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시편들이다." 라고 시의 장점을 말하고 있다.
  • 희지의 세계
  • 황인찬 저 | (주)민음사
  • 동시대 젊은 시인을 대표하는 탁월한 감각, 깊은 사유. 한국문학사와 대결하는 아름답고 슬픈 박력. 어느 날 나는 나의 영혼을 견딜 수 없었다 / 그 아이가 너무 좋았다 -「오수」에서
    여기 시를 쓰는 자신의 영혼을 견딜 수 없어 하는 젊은이가 있다. 동시에 시라는 아이를 너무나 좋아해 버린 시인이 있다. 그의 두 번째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구관조 씻기기』로 제31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황인찬 시인이 돌아온 것이다. 이번 시집 『희지의 세계』를 통해 시인은, 한국문학사와의 대결에 돌입한다. 그것은 ‘매뉴얼화’된 전통과의 다툼이며, 전통에 편입하려는 본인과의 사투이기도 하다. 주체가 퇴조한 동시대 젊은 시인의 움직임 중에서 황인찬의 시는 돋보이는 사유와 감각을 보여 준다. 치밀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 젊은 시인 황인찬이 구축한 『희지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